칼럼

감동 준 사마리아사람 이야기

강원도 산불을 보면서

지난 4월 초 강원도 산불 났을 때 있었던 충북 청주시 한 택시기사 이야기다. 한 젊은 이가 택시를 올라타면서 속초로 가겠 단다. 이 젊은 이는 택시를 타자 마자 급히 자기 부모와 여자친구에게 전화했다. 자기가 강원도 산불 진압에 투입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급히 강원도로 가는 중이다. 이 소리를 등뒤에서 듣게 되자, 그 젊은 이가 소방관임을 깨달은 택시운전사는 무엇이라도 돕고 싶어 그 소방관을 목적지에 내려주면서,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요금을 안 받는 것, 고작 그것 밖에 없다. 택시비는 됐고 무사히 다녀오라”했다. 그 젊은 이는 안된다고 택시요금을 내겠다고 했지만,

“남자가 일구이언 못한다. 부디 다치지 말고 다녀오라”하고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 단다. 이 이야기는 자동차 커뮤니티 네티즌에 화제 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아직도 살만 한 세상이구나 란 희망을 갖게 된다. 신약성서에는 예수께서 소개한 한 감동을 주는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유대인이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강도를 만났다. 그는 강도에게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폭행까지 당해 피 흘리며 길에 쓸어졌다. 이 때 그 길로 유대종교의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는 그냥 피해 지나갔다. 그 뒤로 유대사회의 종교적 지위가 높은 레위인도 지나갔는데, 그도 길가에 상처입고 죽게 된 사람을 보고는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 갔다. 그런데 세번째로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살던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그 길로 지나가다가 길에 쓸어져 죽어 가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말에서 내려 얼른 응급치료를 해준 후 그를 자기 말에 태워 여관을 찾아가 주인에게 가진 돈을 다 털어 지불하면서 자기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리겠다며 잘 보살펴 달라 부탁하고 길을 떠났다.>

이 사회에 있는 세 종류의 사람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사람을 곤충으로 비유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이 세상에는 거미형의 사람과 개미형의 사람과 꿀벌형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거미형의 사람은 있어서는 안될 사람, 개미형의 사람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사람 즉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 반면에 굴벌형은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와 비슷하게 위의 사마리아인 이야기 속에 있는 사람들도 세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된다. 강도 같은 사람, 거짓 종교인 같은 사람, 그리고 감동을 주는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인데 그들의 삶의 철학은 각각 다르다. 그런데 세 종류의 사람은 같은 외진 곳에서 보인 행동이다. 외진 곳에서 강도와, 거짓 종교인과 감명을 주는 사람의 차이가 난다.

강도의 철학

강도는 외진 곳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서 행한다. 그리고 당당하지 않은 걸 안다. 강도의 철학은 “힘이 최고다. 힘만 있으면 남도 부릴 수 있고, 남의 것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다. 요즈음 한국의 김 학의 전 법무차관의 성 접대사건이 탑뉴스다. 오래전 덮여 있던 사건이었는데, 피해 여성들의 고발로, ‘이 사건은 최음제를 투약하여 강제로 성관계한 특수강간사건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강도의 철학을 가진 자의 사건이다. 힘만 있으면 네 것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다. “힘이 정의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은 힘있는 자에겐 법도 무력하다고 믿는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 흔히 말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특권층’이라 부른다. 특권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강도의 철학을 가진 자다. 힘이 법을 초월한다고 믿는다. 힘이 정의라 착각한다. 돈이 힘이고, 권력이 힘이고, 지식이 힘이다. 그래서 힘을 키우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기춘, 김 학의, 우병우 이런 사람들은 최고대학의 최고학과 출신, 즉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엘리트 중 엘리트였다. 아마도 지능지수는 최고였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지수는 제로이다. 오랫동안 특별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법을 무시하고 사회를 움직여왔다. 강도의 철학을 가진 자들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거짓 종교인의 철학

거짓 종교인의 삶의 태도는 매우 위선적이다. 잘 아는 대중 앞에서 하는 태도와 자기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태도가 다르다.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모른 척하고 지나간 것은 의식해야 할 대중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매우 이기적이다.
그래서 자기 것만 챙기면 그만이다. 종교사회학에서는 이런 거짓종교인을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의 사람이라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을 질타하셨다. “남에게 보이려고 또는 남 앞에서만 의로운 체하는 사람’을 위선자라 하셨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았다. 태극기를 망도처럼 두르고 법정에서 기도하는 척 손을 모으고 앉아있는 사람을 보았다. 이런 사람들에겐 강원도 산불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국가 공무원 아니면 불을 못 끄나? 라 말하는 사람들이다.

거짓종교인은 오늘날도 많다. 종교인들은 흔히 종교와 정치는 서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4.19가 일어나도, 5.18사태가 일어나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도, 모른 척하든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손사래 친 종교인들이 많았다. 요즈음 종교인처럼 행세하는 사람은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각과 태도는 허위의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는 사람의 철학

감동을 준 사마리아인, 이 사람은 매우 충격적인 사람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은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사람 된 도리다” 이것이 감동을 주는 사람의 철학이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손해를 무릅쓰고 라도 하는 사람이다. 사회가 아무리 부패하고 악 해도 유지되는 것은 이런 감동적인 충격을 주는 사람들이 구석구석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의 것을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지불하는 사람들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은 재능 있는 사람, 유능한 사람, 많이 배운 자, 부유한 자,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아니다. 남에게 신선한 정신적 충격을 주는 사람은 자기 것을 남과 나누도록 아낌없이 지불하는 사람이다.

강도는 사람이 없는 곳 외진 곳을 찾아 행한다. 거짓 종교인은 사람이 없는 곳에선 모른척하고 지나간다. 그러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사람은 사람이 주위에 있건 없건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아니,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서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보통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주인공을 본받고 싶어,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름으로 만든 자선단체, 병원, 교회들을 세운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과 연관된 법도 있다. 한국에서는 응급의료치료를 해주다가 우발적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구급자에게 면책을 주는 법을 ‘선한 사마리안 법’이라 부른다.

지난 강원도 산불이 발생하자 소방청은 화제 발생한지 1시간 만에 서울, 경기 충북지역 소방차870여대가 밤새 화제현장으로 달려가 강원도 소방관과 함께 불을 껐다. 강원도 산불진화에 나타난 선한 사마리아인은 소방관들이다. 한국사회에서 제일 욕을 먹는 사람은 국회의원이고 제일 존경받는 사람이 소방관이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제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소방관을 꼽는다. 그런데 직업인으로 소방관 인기도는 낮다. 소방관에 대한 처우개선이 필요하다. 그들은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이번 기회에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바꿔주어 그들의 복리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법이 통과됐으면 하고 멀리서 응원한다.

감동주는 마더 테레사의 글

사람들은 종종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며,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세요.
당신이 만일 친절하다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래도 친절을 베푸세요.
당신이 만일 성공한다면 몇몇의 불성실한 친구들과 적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성공하세요.
당신이 만일 정직하고 성실하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속이려 할 것입니다. 그래도 정직하고 성실하세요.
당신이 몇 년에 걸쳐 창조한 것을 누군가가 하루 아침에 부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창조하세요.
당신이 세상에서 평온하고 행복하면 약간의 질투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쨌든 행복하세요.
당신이 오늘 선을 실천한다 해도 내일이면 잊혀 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선을 실천하세요.
당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주십시오. 물론 그것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최선의 것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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