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성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 28주년 연대 행사에 참여하며

– KAN-WIN (여성핫라인) 자원봉사자 허유진

2020년 1월 8일 수요일은 특별한 수요일이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가 28주년을 맞이하는 날이었으니까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는 매주 수요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립니다. 1992년 1월 8일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 당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최초로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정의 기억 연대가 주최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집회는 어느덧 28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집회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요구합니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으로 일본군의 만행을 최초로 증언한 이후 이 집회는 본격적인 사회 운동으로 발돋움해 나갔습니다.

시카고 지역의 경우, 하나센터에서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 28주년 연대 행사” (I am not a “comfort woman”: A 28th Anniversary Solidarity Event)라는 제목으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가정폭력 & 성폭력 전문기관인 KAN-WIN(여성핫라인)과 이민자 권익옹호 단체 하나센터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엘리자베스 손(Elizabeth Son) 교수의 강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자베스 손 교수는 일본군 성노예제 희생자들의 경험과 그들에 대한 다양한 지지 방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책 ‘Embodied Reckonings: “Comfort Women,” Performance and Transpacific Redress’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강연 시작 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이름이 차례대로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소개되었습니다.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로 누군가의 이름들이 하나씩 흘러갑니다. 이 프레젠테이션은 Lariel Joy가 만든 “In Her Name”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위안부”, 즉 일본군 성노예제 희생자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말없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보는 시간은 수요 시위 28주년을 기념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저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부모가 지어 주신 이용수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2007년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과거의 피해를 증언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엘리자베스 손 교수는 “당신은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해 언제 처음 알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통해 청중이 강연 속으로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강연은 전반적이고 풍부한 소재를 바탕으로 일본군 성노예제의 역사, 희생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의 출현 과정, 한국의 정의연대가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7가지 사항, 타이완과 필리핀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연대적인 운동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정의연대가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7가지 사항은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이 있습니다. 특히 강연 중에 설명되었던 “위안부(Comfort Women)”와 성노예제(Military Sex Slavery By Japan)의 용어 차이는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기도 합니다.  “위안부”를 영어로 직역하면 “Comfort Women”입니다. 문제는 이는 자발적인 의미가 느껴져 자칫 오해를 줄 수 있을뿐더러 전쟁 범죄의 의미를 작게 만드는 완곡한 표현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적으로 이 용어가 과거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에 ‘일본군’을 붙여 ‘일본군 위안부’로 말입니다. 한편 현재 UN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위안부(Comfort Women)” 대신 군대 성노예제 (Military Sex Slaver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당시 동원된 여성들의 삶을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노예화시킨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면에서 더 적합한 용어로 여겨질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생존자들 입장에서는 노예라는 어감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고요.

 

이처럼 가해자 중심의 용어인 “위안부(Comfort Women)”와 피해자 중심의 용어인 군대 성노예제 (Military Sex Slavery)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은 그 용어가 담고 있는 의미와 쓰임을 차근히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28주년을 맞이하는 수요 시위를 기념하며 한국, 미국, 일본, 중국을 포함한 12개국의 여러 단체가 각 국의 언어로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곳 미국 시카고에서 이렇게 일본군 성노예제 희생자들을 위한 행사가 주기적으로 열린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날은 그저 평범한 수요일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남긴 돌이킬 수 없는 상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하기 위한 치유, 빼앗겼던 인권을 담대하게 되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국제적인 연대. 이 모든 것을 돌아볼 수 있게 했던, 아프고 잔인한 이 세상에도 ‘희망’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런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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