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갈매기의 꿈

‘갈매기 꿈’은 1970년대에 미국의 어느 공군 조종사가 쓴 소설이다. 본래 제목이 <Jonathan Livingstone Seagal>인데 한국어로는 ‘갈매기의 꿈’으로 번역되었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을 조나단 리빙스턴이란 이름을 가진 갈매기를 의인화했다.

갈매기 조나단은 어느 날 높은 벼랑에 홀로 앉아서 생각해 본다. “자신에겐 왜 하늘을 나를 수 있는 날개가 주어졌을까?’ 갈매기들에게 날개가 주어졌다는 것은 어부들이 새벽 바닷가에 부려 논 죽은 물고기나 달려가 쪼아먹으라고 조물주가 주어진 것은 아닐 게다!

어느 날 은빛 날개를 단 커다란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멋지게 나는 모습을 보고 조나단은 그에게 달려가 멘토가 되어 주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그 멘토로부터 다른 갈매기들은 상상도 못하는 하늘을 더 높이 날 수 있게 되었고, 이상의 날개를 펴고 혼자만이 터득한 고도의 비행술로 다른 세계의 공간을 향해 날아간다.

‘갈매기의 꿈’은 1970년대 많은 젊은 이들에게 읽혔던 베스트 셀러였다.

요즈음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북미 간의 평화관계를 맺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분주히 움직이는 활동을 보면서 갈매기 꿈을 떠올리게 되었다. 미국 길들이기로 유명한 하바드 대학의 스티븐 월트 교수가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 기고문에서 ‘2018년에 감사해야 할 10가지를 열거하였는데, 그 중 다섯 번째로 문재인 대통령을 지목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내심이 많고, 관대하며, 냉철하고, 큰 그림을 계속 보고 있다. 이것은 2018년에 내가 감사할 일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그는 높이 평가하고 극찬한 것이다.

인간의 세 가지 욕망
권력을 취하려는 욕망

무신론자 니체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권력을 취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생명체는 욕망, 충동, 생존으로 시작되는 권력의지가 있다 하였다. 욕망, 충동, 생존, 소유 이런 요소들은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권력의지이다. 권력의 어원은 뒤나미스(Dynamis)라는 헬라어에서 나왔다. 삶은 부정할 수 없는 권력의지가 있다. 그런데 권력의지의 문제는 그것이 타자를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는데 있다. 인간의 권력을 취하려는 욕망은 다이나마이트 같아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동력도 일으키지만, 잘 못 사용되면 돌이킬 수 없고 회복시킬 수 없는 파괴력이 된다.

쾌락에 빠지려는 욕망

기원전 341년 아테네의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 라는 쾌락주의자가 있었다. 그는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 말했다. 아마도 현대인에게 제일 인기가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맞다. 만약에 죽은 후 인간에게 내생이 없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으면 끝인데 오늘 싫 컷 먹고 마시고 즐기고 죽자!”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쾌락에 빠지려는 욕망이다. 요즈음 한국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슈는 성폭력이다. 이는 남성이나 여성을 자신의 쾌락의 욕망을 위한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쾌락에 빠지려는 욕망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의미를 찾으려는 욕망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유대인 뇌 신경학자, 정신과의사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 대량학살의 한 복판에서, 인간 가치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파쇄되는 무서운 용광로 속에서도 녹지 않는 인간을 경험하고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현실 한 복판에서도 운명론에 빠지지 않았다. 사람이 환경과 주변은 바꿀 수 없지만, 운명을 대하는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로 파악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슬픔과 기쁨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도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정신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불안한 20/80의 사회

우리가 사는 사회는 20/80의 사회이다. 가진 자 20%의 사람이 전체의 80%을 소유하고 있고, 못 가진 자 인 80% 사람이 나머지 20%를 나누어 살고 있는 시대이다. 생산력의 엄청난 발전으로 인류는 소수의 생산자와 다수의 소비자로 나누어져 있다. 소수의 생산자의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큰 숙제이다.

로봇이 사람의 일거리를 대신하기 때문에 실업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가진 자는 더 갖게 되고 못 가진 자는 점점 소유가 줄게 되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의 사회적 충격과 그 후유증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 수를 덜 채우고 대신 그 무게만큼 화물을 더 실어 배가 기울 때 균형을 잡아주지 못한 원인이었다고 본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20/80의 사회는 불안한 사회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10/90으로 더 기울어질 때 그 사회라는 배는 파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불란서 혁명을 배경으로 한 빅토 위고의 영화 ‘레 미제라블’은 불란서 혁명사회의 모습을 조명하기 위한 영화로 보인다. 불란서 혁명은 1789년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고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자유의식이 고취된 가운데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의 불만을 가중시켜 마침내 흉작으로 일어난 도시민과 농민의 봉기가 일어났다.

남북평화와 공존을 위해

남북 기차길이 뚫린다. 남북철도 공동조사 팀은 유엔과 미국으로부터 남북철도 공동조사 제재 면제를 받았다. 남북은 30일부터 남북철도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북측구간 철도 공동조사를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경의선, 동해선이 이젠 곧 뚫릴 것이다. 남한의 기차 기관차 1량과 열차 6량이 서울역을 출발하여 판문역을 통해 16일 동안 2천 600 킬로미터의 북한 땅 철길을 기적소리와 함께 누빌 것이다. 이 기적소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알리는 기적소리로 울려질 것이다.

68년동안 한반도의 남과 북은 총뿌리를 서로 맞대고 원수처럼 지내왔다. 오랜 냉전의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 이제는 판문점 공동구역이 비무장지대로 탈바꿈하게 됐다. 이젠 군사전략가가 필요 없게 됐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는 죽어야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낳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논리다. 이런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종교의 목적은 권력추구도, 쾌락추구도 아닌, 삶의 의미추구에 있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내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을 찾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책임지도록 격려하는데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많은 개신교회는 종교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평화와 공존을 견인해야 할 교회는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이니, 용공이니 하는 한심한 목청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 남북의 평화와 공존은 신의 뜻이다.

현상 유지이냐?
현상 변화이냐?

정치의 목적은 정의 실현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이미 기원전 380년경에 정의의 본질을 논하면서 그 방법으로 국가를 설립하고, 어떠한 국가가 정의의 덕을 실현하는지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상국가는 철인이 다스리는 국가라고 말한다. 그것은 통치의 철학이 없이는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철학은 정의 실현이다. 이것이 정치를 하는 목적이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계를 들여다보면, 권력유지를 정치의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유지하느냐? 권력을 취하려는 의지, 이것은 욕망이지 선한 목적은 될 수 없다.

오늘날 정치를 보면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있다. 보수는 현상유지에, 진보는 현상변화에 목숨을 건다. 많은 정치인들이 보수 쪽이나 진보 쪽 이나, 정치의 목적이 정의 실현이 아니라, 권력유지와 이권을 취하는데 눈이 멀어 있다. 정치를 권모술수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이루려면 철인이 통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치자란 선한 이상을 인식하는 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이상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고 성서는 말한다. 높이 나는 새 라야 멀리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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