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올아인 오방간다

3.1절 100주년에

처음 위 프로그램의 타이틀을 접했을때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도올은 동양철학자 김용옥의 호이고 아인은 영화배우 유아인이란 직감이 들었는데 도대체 오방간다는 무슨 뜻이고 두사람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지 싶어서였다.

KBS가 3.1절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일명 “지식 버라이어티 쇼”라고 하는 프로인데 방송사상 처음인 시도라고.처음 제작진이 도올에게 지난 100년간의 근대사를 강연형식으로 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도올이 유아인을 추천, 젊은사람과 함께 하면 훨씬 더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것같다고 했다나.

71세의 노학자와 33세의 잘나가는 배우를 묶어서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하려고?라는 의문이 들었다. 1월 26일 4회째를 우연히 보고 꽤나 재미있어서 지나간 3회를 소급해 본다음 2월 23일 8회 방송분까지를 보았다(토요일 방송). 12부작이라고 하니 아직 4회분량이 남은것이겠다.

첫째 “오방간다”는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과 아울러 그 중심(5번째 방향) 을 포함하여 “모든 방향을 아우른다” 또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는 뜻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즐겁고 흥겨운 경우에, “뿅간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라고 한다.

유아인의 제의로 그렇게 했다고. 타이틀이 암시하듯이 이 쇼는 기본 후레임은 있으되 전과정이 유연하게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다.

도올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동양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아인은 17세에 데뷔하여 고교를 자퇴한 경력이 있는, 지난 15년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하면서 굳건하게 자기경력을 쌓아온 배우이다. 2018년 “버닝”이란 영화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의 최고배우 12인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진 배우이기도 하다.

근 40년의 나이차이와 전혀 다른 개성과 분야의 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이 즉흥 “지식쇼”는 어떨까? 놀랍게도 재미있다. 게다가 이 쇼의 음악 큐레이터로 참가한 43세의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의 맛갈나는 소리도 재미를 더해준다. 남성 소리꾼이 드문 전통 민요판에서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로 각종 상을 휩쓴 경력은 둘째로 치고 요란한 가발과 드레스, 색안경, 미니 스커트에 하이힐 차림으로 여장을 하고 때로는 전통 여자,남자 한복차림으로 양악, 국악 반주를 넘나들며 전통민요를 구성지게 부르는 이 괴짜 소리꾼은 회를 거듭하며 방청객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전통민요를 기발하게 포장하여 판다고 해야할까? 수많은 해외공연으로 여권이 거덜이 날 지경이라고.서구사회에서 말하는 Drag Queen이겠는데 한국사회가 이제 그만큼 열려 있다는 반증일까? 이 프로는 신선하다. 그냥 단순한 오락 프로가 아니고 우리의 근현대사 100년을 아우르며, 일반이 알고있는 피상적인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그 사실속에 숨쉬는 특정한 사람들을 조명한다. 역사지식이 해박한 도올이 일반이 몰랐던 사실들을 특유의 째지는 목소리로 설파하는데 때로 눈물나게 감동적이다.

최시형, 안중근,안창호, 여운형, 홍범도, 윤봉길등,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자신들의 삶을 바친 애국자들의 발자취를 살피며 우리의 현재와 그들이 밟아간 궤적이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방청객들과 토론하며, 도올의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쐐기를 박기도 하는 유아인의 논리정연하고 재치있는 사회솜씨가 합해져 자연스레 역사공부를 하며 우리의 현재를 가감없이 인정하고 미래를 바라볼수 있도록 유도해준다.

3.1절 100주년을 기리며, 3.1 운동의 밑그림을 그렸던 몽양 여운형에 대해 절절히 설파한 도올의 얘기를 잠시 옮겨볼까 한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있는 3.1운동은 종로 태화관에서 의암 손병희를 필두로한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의 독립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 시점을 계기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렸다는 정도인데,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이끈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도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배웠다.
고종의 독살 소문이 직접적인 촉발제가 되어 만세운동이 일어 났다고 하나 그 이전에 이미 여운형과 그가 이끄는 신한 청년단이 3.1만세운동의 지반을 굳혔다는것이 여러가지 기록으로 남아있고 그 세세한 내용을 도올의 열변으로 듣게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청년 여운형, 1886년 경기도 양평의 대양반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기 동학사상에 심취한 조부의 영향을 받아 자라면서 인간의 평등사상을 체득하게 된다.

1907년 도산 안창호의 연설에 감화를 받아 독립운동에 투신, 집안에서 부리던 노비들을 모두 풀어주고 교육 계몽활동을 하다가 28세에 중국으로 가 난징의 금릉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상해로 건너간다. 1910년 한일합방의 국치를 겪고 1918년 11월, 세계 제 1차대전이 끝나고 당시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에 심대한 영향을 받은 그는 당시 윌슨 대통령의 특사로 상해를 방문 중인 챨스 크레인을 만나게 된다.

여운형은 힘이 장사요 온갖 스포츠에 능해 각종 체육활동을 활발히 하던 중 그 인연으로 중국 고관 왕정정과 친교를 맺게 되고 그의 소개로 크레인을 만나게 되는데, 여운형으로부터 조선사정을 소상히 알게된 크레인은 파리강화 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전세계에 조선의 억울함을 알리도록 권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가 약소국의 사정에 무관심하니 일단 밀사를 보내고 강화회의에 즈음하여 조선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일으켜 세계의 주의를 환기시키면 큰 효과를 보리라고 얘기해준다.

여운형은 지체없이 6인의 동료들을 규합하여 “신한청년단”이라 칭한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고 대표로 김규식을 파리로 파견하는데 김규식은 경신학교( 연희전문의 전신)를 설립한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의 양자로 영어에 능통하였다.갑작스레 파리로 가는 선편에 자리가 없어 다시 왕정정의 도움으로 중국대표 40명중 한 대표의 양보를 받아 1919년 2월 상해에서 파리행 선편에 오르게 된다. 한달후 파리에 도착한 김규식은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전달하고 한편, 여운형은 장덕수, 선우혁, 이광수등을 파견하여 일본 유학생들, 러시아의 조선인들, 국내의 유지들을 만나 거사를 당부하게 된다.

그때 의암 손병희를 만나게 되는데 통큰 의암이 거금을 희사했다고. 구체적인 거사계획을 짜고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인쇄하고 각지방으로 발송하고 하는 그 한달여의 준비 기간중 전혀 비밀이 새어 나가질 않았으니. 수많은 친일파들과 일경의 감시망을 피해 이루어진 이 거사가 바로 3.1 만세운동이다.

이 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바로 4월 11일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이후 일본은 강압일색이던 통치방법을 바꿔 문화정책을 도입하게 되는데 1919년 말, 그들 나름의 회유정책으로 조선인들에게 신망이 높던 여운형을 국빈대접으로 초청하여 일본의 신문물과 발전상을 보여준다. 그가 변절하면 민족운동도 시들해 질것이란 계산이었으나 웬걸, 일본정부 고관들과 가진 일련의 회담에서 그들의 예상을 뒤집는 꿋꿋한 발언과 500여명의 외국 언론인들을 초청한 제국호텔 연설에서 당당하게 “민족의 독립을 희구하는것은 신의 섭리이다. 일본인에게 기본적인 생존권이 있는데 왜 조선인에게는 없어야 되느냐? 조선의 독립이야말로 일본의 생존과 번영을 지키는 길이다.”라고 연설하여 놀람과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그가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 시절(1937년), 손기정의 올림픽 금메달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인쇄하여 결국 신문을 폐간하게 된 것도 그의 애국심과 뱃짱과 사람됨을 말해주는 일화이다. 여운형은 해방후 각종 정치활동에 참여하다가 1947년 7월 19일 그의 나이 61세에 한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 당하게 된다.

3.1운동은 무기없는 혁명이었으며 모든 한국인이 하나의 목표로 대동단결하여 명실상부하게 근대민족으로 거듭나는 사건이었다.

이 3.1운동의 밑거름을 뿌린 이가 몽양 여운형이다. 동시대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우국지사들이 많지만 후세에 그들만큼 세인의 뇌리에 남아있지 않은 까닭은 해방후 그가 복잡하고 혼탁한 정치판에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정치노선 때문이리라.

그러나 일제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가 내린 결단과 행동들은 분명 우리가 기억하고 기려야할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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