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차드J. 데일리 시장에 대한 평가(1)

정치머신과 시청의 유착

1955-1976년 21년간 시카고시장으로 시카고를 쥐락펴락했던 리차드 조셉 데일리 (1902-1976: RJD, 아버지 데일리)에 대한 평가는 그가 1976.12.20. 갑작스럽게 사망한 지 40년도 지난 지금에도 간단하게 내릴 수가 없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아주 많은 그에 대한 연구를 읽어보아도, 그의 시정은 곳곳에서 복잡하고 (complicated) 상반되는 (contradictory) 것이 너무 많이 발견된다. 그래서, “아버지 데일리 어떤 시장?” 물으면 “글쎄…” 하게 된다. 오늘은, (들려오는 ‘Good luck!’ 소리는 애써 무시하고), 데일리에 대한 평가 한번 시도해보려 한다. 한 가지 밝혀야 할 점은 오늘의 평가는 데일리의 21년을 “언제/무엇을/왜/어떻게”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큰 그림, 아님 그림의 큰 획을 살펴보는 시도라는 점이다.

흔히들, 아버지 데일리의 사망으로 미국의 대도시 올드타임 정치머신 보스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생전에 줄곧 자신은 ‘올드 정치머신 보스가 아니라 새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 (not a boss of the old machine but a new leader of today)라고 주장했으니, ‘내가 올드타임 보스라고?’ 무덤 속의 데일리가 들으면, ‘데일리는 시카고의 사랑받는 (파라오) 라 한 뉴욕타임스 보도(시카고역사87참조) 안 보았어?’ 하며 펄쩍 뛰지 않을 가 싶다. 짐작컨데 그는 ‘시카고의 사랑받는’ 까지만 읽지 않았을 가? 왜냐하면, 데일리는 분명 애굽의 파라오같은 제왕적 시카고시장 이었으니까. 포인트는, 아버지 데일리시장은 왕국시대가 아닌 20세기 미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Good government is good politics (좋은 정부가 좋은 정치) 표어를 내세운 선거캠페인 으로 6번이나 자유선거에서 승리, 시카고의 철권 시장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 데일리는 어떻게 매 4년마다 자유선거를 치르며 철권시장 위치를 고수하였을 가? ‘그야 물론, 시카고의 전통적인 부정투표를 이용했겠지’ 하시는 분은 데일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는, 1953년 시카고의 정치머신 쿡카운티민주당(Cook County Democratic Party-CCDP)의 보스로 선출될 때부터, 로칼 선거에서 한번도 부정투표를 시도한 적이 없다. 그럼 어떻게? 1953년에는 하늘의 도움으로, 그 후로는 정치머신 CCDP를 완벽하게 이용해 투표자들의 자발적인 ‘데일리 후원’을 끌어 냈던 것이다.

‘1953년 하늘의 도움’은 무슨 소리? 1950년 CCDP의 서기장(clerk)이 되며 시카고시장의 꿈을 키워가던 데일리는 1953년 7월 CCDP 의장 자리를 놓고 막강한 정치력을 가진 시의회의 리더 와그너 (Clarence Wagner) 시의원과 격돌한다.

데일리는 CCDP의 개혁파 후보로, 와그너는 보수진영 대표로. 비공개 모임이었으니 얼마나 격양된 토론이 오고 갔는 지는 알 수 없으나, CCDP는 두 사람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한 채 2주간의 정회(recess)를 갖기로 했는데, 아뿔사! 위스콘신으로 휴가 갔던 와그너가 교통사고로 그만 사망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데일리가 CCDP (정치머신) 의장(보스)가 되었던 것. 이를 발판으로 데일리는 정적을 배제하고 머신 조직을 근대화/개혁하면서 차근차근 CCDP를 장악하였고, 드디어1955년 CCDP시장공천 모임에서 케넬리 시장을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며 그를 밀어내고 CCDP의 공천을 받았다.

라코브(Milton Rakove)에 따르면, 데일리의 21년을 살펴보면 6개의 원천 (6 wellsprings)이 보이는데, 이는, 그의 카톨릭 신앙, 가정, 아이리시(Irish)인종, 그가 일생을 보낸 네이버후드 브리지포트 인맥, 민주당 커넥션 그리고 시카고 사랑이다. 즉, 데일리는, 시카고의 각 네이버후드에 사는 백인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촉각을 세우며 파악하고 충족시키려는 시정을 펼쳤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정치머신을 통한 각 네이버후드의 정보 파악은 절대 필요한 것이었고, 상세한 정보 파악은 데일리가 50명의 시의회를 장악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하루 아침에 되어진 일은 아닐 터. 일설에 의하면, 처음 2년간 데일리와 시의회는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한다. 아! 이제야 데일리가 1955년 시장으로 당선되면 CCDP 보스는 사직하겠다던 공약을 깡그리 무시하고 죽을 때까지 시장과 보스를 고수한 이유를 알 듯하다.

시카고 주민들은 시장에게서 무엇을 원했던 가? 1955년 일리노이 유권자협회 사무총장 커닝함 (James Cunningham)의 트리뷴 기고에 의하면, ‘정기적인 쓰레기 수거, 위험이 없는 거리, 좋은 학교, 공정한 세금, 별 쇠퇴되지 않은 네이버후드, 그리 어렵지 않은 파킹, 조용한 인종관계 등, 극히 일상적인 것이라 한다. 데일리는 이러한 주민들의 요구 충족을 우선 순위 No 1으로 삼았고, 그 성취를 위해 시카고 시의 서비스 제공을 비즈니스화 하였고,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올인한다. 그래서, 데일리 시절에는 쓰레기 수거는 꼬박 꼬박 이뤄졌고, 건물 수리 퍼밋 비용을 대폭 삭감하여 개인 건물 보수가 용이해졌고, 자신의 협상 중재 수완을 십분 발휘해 노조들과 사이 좋게 지냈고, 다운타운의 빌딩 건축 붐을 일으킨다 (시카고역사 #79 참조). 그 결과로, 데일리의 처음 8년간은 백인들의 교외 탈출이 주춤했고, 시카고는 City that works 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데일리의no.1 치적으로 이 점을 든다. 즉, 데일리로 인해 시카고가 2차대전 이후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버팔로 같은 ‘rust belt’ 도시들이 겪었던 몰락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데일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시카고 시정과 머신 정치를 밀착시켜 자발적(?) 투표를 하게했는 지를 보여주는 경우는 많다. 머신이 공천한 후보 (물론 데일리)에게 투표하지 지역은 도로포장도, 고장난 신호등 보수도 ‘부지하 세월’이기 일쑤이고, 유권자 반란 (voter mutiny)은 아예 처음부터 싹둑 잘라버렸다. 데일리와 시카고 정치의 중진인 폴리시 아다모스키 (Ben Adamowski)가 격돌한1963년 시카고 시장 선거철에 일어난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폴리시 지역 한 식당에서 ‘Adamowski for mayor’라는 배너를 창에 달았다. 그날부터 2틀동안 정치머신의 그 지역 캡틴이 배너를 떼어낼 것을 요구한다. 이를 거절한 식당 주인, 3일째 되는 날에는 시청 조사관들의 방문을 받았고 개인적으로 아다모스키에게 투표하는 것은 오케이. 그러나 공공적인 데일리 반대는 곤란하다는 조사관의 언질과 함께 $2,100 화재코드 반칙 벌금을 내고 배너를 내렸다 한다. 1959년부터 카운티 검사장으로 데일리 주변을 수사하던 아다모스키는 1963년 시장 선거에서 이 사건을 공개하고 주거에 관한 흑백인종 차별 철폐 정책, open housing에 대한 소견을 내놓으라며 데일리를 맹공격하였다. 이미 언급한대로, 1963년 시장선거는 데일리로 하여금 흑인시장 워싱턴 (Harold Washington)의 표현대로 철저한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공공연하게 펴는 분기점이 된다 (RJD was a racist from head to toe and from hip to hip).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번으로….

잠깐만! 공약을 어기는 것은 거짓말, 매춘이나 도박 등 퇴폐산업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말라며 눈 감아주는 것은 카톨릭 신앙에 위배되는 것 아닌 가? 무언가 찔리는 지, 데일리는 시장과 정치머신에 관련된 업무는 각 각 다른 장소에서 보았다고 한다. 시장 업무는 물론 시청 5층 시장실에서, 머신에 관한 것은 근처의 호텔 방에서. 흠! 흠! 그렇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지나?

또 하나: 데일리가 1973년 아들 존(John)이 일하는 보험회사로 시카고 시의 모든 보험을 옮겨서, 그 회사가 $500,000 커미션을 받은 것이 밝혀졌다. 사람들이 unethical 하다고 항의하니까, 데일리 왈, ‘내 아들을 돕는 일인데, 그걸 못한다 하면 정치는 왜 해?’ 로이코 (Mike Royko)가 데일리를 위선자로 매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이코는 데일리의 정치 원칙을, ‘도적질은 금물, 또한 누군가 도적질하는 것을 보아도 절대 발설하지 말 것 (Thou shalt not steal, but thou shalt not blow the whistle on anybody who does)”이라고 비꼬았다.

시카고를 잘 살게 하겠다는 목적이 확실하니 어떤 수단이라도 정당화 된다는 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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