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이클 빌란딕 (Michael A. Bilandic)이 시장대행에서 시장이 된 스토리

1976. 12. 20. 연말 축하 행사를 즐기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리차드 J. 데일리의 시장 잔여 임기는 2년 4개월이다. 당시의 일리노이 주법에 의해, 시카고 시의회는 빠른 시일 안에 시장대행 (Acting mayor)을 선출하고, 6개월 내에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울 시장을 특별 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했다.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그 당시 시카고 시의회는 50명의 시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공화당 시의원은 단 한(1)명, 4명은 ‘정치머신? Oh, No!’ 하던 ‘나 홀로’ 민주당원, 나머지 45명은 ‘정치머신의 충성분자’ 민주당원이었다. 1976년12월28일 시카고 시의회는 <찬성45: 반대 2>로 마이클 빌란딕을 시장대행으로 선출한다.
아, 하! 정치머신 충성분자들만 빌란딕을 지지했네! 하겠지만, 실제는 조금 달랐다.

데일리 장례식 하루 전인 1976.12.21. 저녁 시카고 시의회 계파 대표들이 모여 시장대행 후보 단일화를 위한 본격적인 물밑 협상이 시작되었을 때 (시카고역사 #90참조),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계파는 흑인 그룹이었다. 그 당시 시카고의 흑인 주민은 숫자적으로나 정치인식으로나 상승 일로여서 투표권자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시의회 안팎에서 프로스트(Wilson Frost)를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나 홀로’ 민주당 시의원 중에도 이번에는 흑인의 차례이다 할 정도였다. 그러면 어떻게 빌란딕이 단일화 후보가 되어 시장대행에 선출되었을까? 첫째 이유는, 빌란딕은 전형적인 데일리 머신 맨이어서 정치머신의 지지가 있었고, 동료 시의원들에게 1976년 성탄 전야에 특별선거에 절대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흑인인 프로스트는 데일리의 사망으로 혼돈에 빠진 시카고를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공감을 얻은 탓이다. 빌란딕에 반대 표를 던졌던 (백인) 심슨 (Dick Simpson)이, ‘프로스트가 선출되지 못한 유일한 이유는 그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라 한 것이 이를 반영해준다. 프로스트 자신도 빌란딕에 찬성 표를 던지면서, 비방하는 지지자들에게 ‘내가 흑인인 관계로 과반수가 넘는 지지표를 얻을 수 없는 데, 왜 자살 골을 넣을까? 나는 실리를 택하였다’ 했다. 사연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프로스트는 이때부터 시카고 흑인사회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고, 그 대신 워싱턴 (Harold Washington)이 ‘시카고의 잠자는 호랑이 (sleeping giant) 흑인을 주목하라!’며 시카고 흑인사회의 대변인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빌란딕의 시장대행 선출은 역사적으로 시카고 정치머신의 ‘마지막 한 수 (Last hurrah)’ 로 기록되었다.

여하튼, 젠틀맨 빌란딕은 기꺼이 데일리 사단을 그대로 물려받아 시카고 시정을 데일리 식으로 운영하였는 데, 시장대행이 된 지 일주일 조금 지나면서부터 ‘시카고 시민이 원한다면, ‘Draft Bilandic for Mayor’에 응할 수 있다’ 고 자신의 특별선거 출마를 기정 사실화하기 시작한다. ‘이건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푸친스키 왈) ‘제자가 스승을 닮지 누굴 닮을 꼬? 내 그럴 줄 알았다’ 와 함께 ‘왕세자 (Prince of Wales)에 그친 빌란딕!’ 혹은 ‘시카고에서 왕(king)은 오직 데일리!’ 이란 인식이 퍼져 나가면서 아버지 데일리와 마찬가지로 빌란딕의 특별선거 불출마 약속은 잊혀가는 듯, 시카고/전국의 언론에서도 언급이 거의 없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1931년부터 45년 간 시카고 시청을 좌지우지하던 정치머신의 몰락 우려가 큰 작용을 하였을 것은 삼척동자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시장대행 빌란딕은 기꺼이 (데일리) 정치머신 (Cook County Democratic Party-CCDP)의 충직한 멤버의 행보를 이어갔다. 후에 혹자는 빌란딕의 자발적인 caretaker 행보의 저변에는 CCDP를 장악하고 있던 아버지 데일리의 맏아들 리차드 M. 데일리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글쎄~, 리차드 M.이 실제로 눈치밥을 먹였는 지는 알 길이 없지만, 빌란딕은 자신의 정치능력 부족으로 시의회 운영을 아들 데일리가 이끄는 데일리 머신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빌란딕은 거의 6개월에 걸친 시장대행을 끝내고 1977.6.22. 제39대 시카고 시장이 되어 1979년 4월까지 아버지 데일리 시장의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된다. 시카고는 민주당 일색, 당연히 민주당 예비선거의 승자가 일반선거의 승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빌란딕이 치룬 1977년 4월의 민주당 예비선거를 살펴보자.

1977년 봄 시카고의 정치머신이 절대 지지한 후보는 물론 마이클 빌란딕. 그를 중심으로 뭉치자는 정치머신의 읍소에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반발한 사람은 빌란딕의 불출마 약속을 액면 그대로 믿고 처음부터 특별선거 출마를 발표하였던 폴리시 그룹의 좌장 푸친스키 (Roman Pucinski)이다. 그는 시카고의 거대한 폴리시 그룹을 등에 없고 빌란딕에게 공개토론 도전장을 끊임없이 보냈다. 물론, 빌란딕은 한번도 응하지 않고 그의 도전을 무시해 버렸다. 시카고 트리뷴도 빌란딕의 시정운영이 무난, 시카고를 안정시켰다며 빌란딕을 지지했고, 푸친스키를 ‘불필요한 말썽을 부리는 악동’ 인양 묘사하였다.

빌란딕의 두번째 도전자는 1969년 말 블랙 팬더 급습을 계획/수행했던 전 쿡 카운티 검사장 한라한(Edward V. Hanrahan)이다 (시카고역사#85 참조). 한라한은, 빌란딕의 시정운영은 그의 이름 Bilandic에서 I 와 ic를 뺀 bland (무미건조한) 하다고 놀리며 빌란딕에게서 무슨 비전이나 역사의식을 찾아볼 수 있느냐고 비방하였다. 이에 발끈한 빌란딕, ‘내가 정치 비전이 없다고?’ 하며 행정전문가들의 미팅을 소집한다. 끌~끌. 한라한이 꼬집은 것은 시장은 필요하다면 불호령을 내기도 하고, 시정에 해가 되는 관계는 싹둑 해버릴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젠틀맨 빌란딕은 이렇게 밖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빌란딕의 세번째 도전자는 후에 시카고의 (지금까지) 유일한 흑인 시장인 워싱턴 (Harold Washington) 주 상원의원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프로스트가 시장대행 선출에서 흑인들의 희망을 무시하였다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시카고 흑인사회의 별로 떠오르기 시작한 워싱턴은 빌란딕과 마찬가지로 그때까지 중년 미혼 변호사이다. 워싱턴의 캠페인은 재정도 미약했고, 조직도 별로 없이 주로 시카고 남부 흑인 지역구에 한정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법적 문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출마가 눈에 돋보이는 이유는 워싱턴 특유의 친화감 넘치는 화술과 늘어가는 흑인인구 때문이다. 시장 재직 시절 필자가 만났던 워싱턴은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는, 그래서 누구나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전형적인, 전설적인 정치인이었다.

그가 남부 에버니져 미션너리 침례교회 (Ebneezer Missionary Baptist Church)에서 한 말, ‘시카고의 잠자는 거인, 즉, 흑인이 깨어나면 시카고는 흑인이 컨트롤 한다’는 1983년 시장선거에서 현실화되었다.

3명 후보자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빌란딕은 4월의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과반수 (50%)를 조금 넘는 지지를 얻어 6월의 시장 특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확정이 되었고, 허울뿐인 공화당 후보와 맞선 일반선거에서 승리한다. 예비선거에서 빌란딕은 50개의 지역구 중에 38개 지역을 석권했고, 13만 표의 마진으로 승리하였기에, 그의 예비선거 승리는 탄탄한 듯 보이나, 좀 더 자세히 살피면, 푸친스키가 32%의 지지율로 7개 지역구를 차지했고, 워싱턴이 10% 지지 투표와 5개의 중산층 흑인 지역구를 석권, 여기에 레익프론트 리버랄 백인 반발표를 합치면 빌란딕의 1979년 선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러한 정치현실에 놓인 빌란딕은 1979년 정월부터 시카고를 동결시킨 눈사태를 맞으며 제인 번의 집요한 도전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시카고 시장 직을 내려놓게 된다. 이로써, 빌란딕 시장은 미국 대도시 정치머신의 마지막 주자라는 불명예(?)를 얻는다.

이 이야기는 다음 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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