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CHICAGO FREEDOM MOVEMENT

리차드 J. 데일리 시대 (4)

지난 번에 이어, 오늘도 데일리의 아킬레스건 (Achilles tendon)인 흑/백 문제가 미국 아니 전세계에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던 사건, 다름아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시카고프리덤운동(Chicago Freedom Movement)에 대처하는 데일리를 살펴보겠다. 시카고역사를 잘 읽어본 분들은, “시카고의 철저하고 극심했던 흑백 거주지역 차별은 데일리 시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데, “굳이 왜?” 할 듯싶어, 필자의 경험을 나눈다. 데일리 시대 연구들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 저자가 흑인인지, 백인인지 대충 짐작될 정도로 우리의 역사 보기는 관점에 따라 달리 읽히고, 정치리더의 발언/행동들이 당시 사회풍조를 조장한 것이 보인다. 이민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에 힘(?)입어 어느 백인이 뉴욕 전철의 한인합법이민자에게 험한 말을 했다는 기사를 보며, 대낮에 평화적 시위를 하는 킹목사에게 돌을 던지며 몸싸움을 벌였던 시카고 주민들에게 “어찌 이럴 수가?” 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우선, 1955-68년 흑인 민권운동을 연대적으로 아주 아주 간단히 열거한다. 1955-56년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 시내 버스 보이콧의 성공으로 킹목사를 전국적인 인물로 만든 사건으로 시작되어, 1957.9. 리틀록(아칸소)센트랄 고등학교 사건, 그린스보로(노스캐롤라이나) 백화점에서 1960.2.1.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진 sit-in운동, 1961.5.4. 워싱턴DC에서 알라바마와 미시시피로 향한 Freedom Rides, 1963.8.28, DC 링컨메모리알 앞에서의 March on the Mall, 1964년 민권 법 (Civil Rights Act)와 1965년의 투표권 법안 (Voting Rights Act) 통과, 그리고, 1968년 4.4. 마틴 루터 킹목사의 저격 사망으로 끝난 흑인민권 운동이다. 제대로 설명하자면 한 사건, 한 사건마다 한 . 두 권의 기록으로는 역부족이지만, 크게 보자면 19세기 말부터 주로 남부지역에서 철저하게 시행되었던 Jim Crow 법을 연방법으로 뒤엎어 흑인에 대한 법적(du jure)불평등 타파를 목적한 운동인데, 1965년까지도 북부, 중서부와 서부의 미국인들은 ‘남부 너희들, 왜 이리 잔인해?’하며 뒷짐지고 ‘쯧쯧’ 혀를 차곤 하였었다.

시카고와의 관련은? 킹목사의 시카고 활동의 공식 시작은 1966년 1월 5일 ‘시카고 플랜’ 발표이지만, 킹목사는 1964/65 년에도 간간히 시카고에 들러 대규모 집회도 하고, 정치.경제 리더들을 만나면서, 남부지역의 법적 불평등 타파를 북부지역의 실제적인(de facto) 불평등 타파 운동으로 확대시키려 하였다. 실제적 차별 타파의 첫 번째 실험장으로 픽업된 곳이 시카고, 주요 타겟 이슈가 시카고의 극빈층 지역인 Near West side의 형편없는 흑인 빈민층의 주택(racially segregated housing) 문제이다.
시카고의 유서(?)깊은 실제적 흑인 차별은 북부에서는 단연코 No. 1이었고, 흑백 주거지 격리는 워낙 유명했으니 당연한 일 아닐까? 싶은데, 데일리는 ‘왜? 하필이면 지금 내가 시장으로 있는 이때 시카고야?’ 신경질이 났었나 보다. 1965년 말 킹목사의 조직인 SCLC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가 시카고를 픽업한 것을 알게 되자, 겉으로는 환영! 하면서도, 흑인 시의원 멧칼페(Ralph Metcalfe)를 부추겨 흑인사회에 anti (반)-킹 목사 그룹을 만들게 한다. 멧칼페의 말: ‘킹 목사 당신이 데일리 시장을 만나보지 않아서 몰라, 시카고에는 데일리 시장이라는 훌륭한 리더십이 있어. 굳이 당신이 올 필요는 없어!’ 물론, 시카고의 킹 목사 지지자들 중에도 킹목사의 시카고 행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그들은 데일리의 뿌리깊은 흑인혐오를 알고 있어 킹 목사가 다칠 것을 염려했었다.

전통적으로 시카고의 흑인지역은 동서로는 스테이트 가(State St.)에서 미시간호수, 남북으로는 남부 35가에서 30블럭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는 좁고 길다란 흑인벨트 (Black Belt) 지역이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시카고 흑인인구의 팽창은 이 흑인벨트 지역의 확대가 불가피하게 만드는 데, 그때마다 백인들의 폭동이 이어졌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 1, 2차 흑인대이동(The Great Migrations), 특히 2차대전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시카고의 흑인 인구로 인해, 1960년대 초부터는 그 유명한 Block-busting을 이용한 백인 부동산 중개업자들에 의해 서쪽지역인 론데일 (Lawndale)지역에 제 2의 블랙벨트가 형성되었다.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백인 집주인에게 높은 렌트를 내며 살았는 지, 이곳을 슬럼데일 (slumdale)이라 부를 정도로 흑인 빈민층이 모여 있고 형편없는 주택 (poor housing)이 즐비한 지역이다. 지난 번에 살펴본 테일러 홈 건설로 높아진 전통적인 블랙벨트의 가난 수치 (poverty index)보다도 훨씬 더 높은 가난 수치를 나타낸 극빈자 흑인 거주지역이다.
시카고프리덤운동(Chicago Freedom Movement)이라 명명된 킹목사가 주도한 운동의 목적은 ‘시카고에서 빈민가(슬럼)을 없애기 위해 슬럼을 지속시켜온 정치/경제 세력의 무조건 항복’이다. 이를 위해 킹 목사 일행이 론데일 지역의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계획이 발표된다. 비워 있는 아파트도 많고 크레딧이 좋은 데도 킹목사가 아파트 임대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비어 둘 망정, 킹 목사, 당신들은 싫어!’ 이었을까? 흠~~ 어렵사리 1550 S. Hamlin St. 의 방 4개 아파트에 월 90불에 입주한 킹 목사 일행은 이곳에서 1966년 1월 26일부터 18개월 간 살면서 솔저필드 스타디움에서 대규모 집회도 하고, 시장면회도 시도하고, 경찰관계자들과 면담도 하고, 시카고언론과의 인터뷰도 하고, 부동산 업자들 같은 흑.백인 지도자들과 만나기도 하고, 평화적 시위를 주도하면서 시카고 프리덤운동을 계속하였다.
데일리의 반응은? 한마디로, ‘tit-for-tat’ (네가 tit하면 나는 tat)이다. 예를 들어; 시카고의 슬럼을 없애겠다고? ‘시카고에 슬럼은 없어. 단지 낙후된(bad) 하우징이 있을 뿐. 그래서 향후 2년 내에 시카고 모든 가난한 지역의 낙후된 주택을 없애는 것이 데일리 정부의 첫 번째 목표. 이를 위해 23억 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그랜트를 신청할 예정’이라 하였고; 킹 목사가 모금파티를 열면 데일리는 곧장 센트패트릭 데이 퍼레이드를 거창하게 하고; 경찰국장으로 하여금 킹 목사를 면접하게 하지만, 데일리 시장과의 면담이나 시의회 연설은 일언지하에 거부하고; 킹 목사의 솔저필드 집회 하루 전인 1966.7.9.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지난 18개월 간 시카고에서는 9,226동의 아파트 빌딩 (102,847채의 아파트)이 개선되었다고 발표하고; 솔저필드 집회 후에 킹 목사와 지지자들이 요구사항을 들고 보도행진으로 시청 건물에 갔을 때는 아예 입구에서 출입을 차단시키는 등 그야말로, ‘시카고에 살지도 않으면서 당신이 시카고를 알긴 뭘 안다고 그래’ 하며 얼굴에 철판 깔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1966년 8월 5일, 남서쪽 백인지역인 마르켓 팍(Marquette Park)에서는 킹 목사와 700명의 킹 목사 지지자들이 하우징 차별을 반대하는 평화시위를 열고 있었다. 데일리 시장의 ‘킹 목사 깡그리 무시하기’에 신이 난 백인 주민들이 맞불 시위를 열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싶은데, 이날 백인들의 무드는, ‘등에 칼 맞은 킹 목사? 그나마 다행일 걸’ 라는 플래카드가 보여주듯 아슬아슬할 정도로 호전적이었다. 킹 목사 머리에 큼지막한 돌이 날아온 것은 조금 후의 일. 휘~청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 킹 목사에게 쏟아지기 시작한 돌, 병, 폭죽들을 막아내느라 경호원들은 진땀을 흘렸다. 경호원에 둘러싸였지만 끝까지 시위를 마친 킹 목사, ‘흑인들에 대한 시카고 백인들의 이 끔찍한 혐오를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난 이런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하였다. 일년 반 동안 킹 목사는 이런 노골적인 증오를 가감없이 그것도 기꺼이 표출하는 백인들의 시위를 여러 번 겪었다.

1967년 5월 시카고 리더십 카운슬의 ‘Project: Good Neighbor’ 발표와 함께 “천 마일 여정에 오늘 드디어 한 발짝을 떼어 놓는다” 하며 킹 목사는 시카고를 떠난다. ‘남부에서의 흑인차별도 이정도는 아니다’는 코멘트를 남기며. 데일리가 쾌재를 불렀을까? 이를 계기로 시카고 흑인들의 데일리 지지는 땅에 곤두박질 시작하였고, 데일리의 시카고는 TV를 통해 인종혐오의 민낯을 전 미국에 날리게 되었는 데… 결국 누가 웃었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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