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명을 거부하고 변방에서 우뚝 서다

-『시로 납치하다』에서 만난 시인들-

상실. 가난. 억울한 누명.

듣기만해도 멀리 떠나고 싶은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껴안고 삶 속으로 뛰어들어 살아남아 우뚝 서 꽃을 피워낸 변방의 인물들을 한 곳에서 여럿 만났습니다. 류시화 시인이 엮고 해설한 시집『시로 납치하다』에서였습니다. ‘인생학교에서 시읽기’라는 부제답게 류시화 시인은 시와 시인들 이야기로 인생이라는 귀한 공부를 시켜줍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말라고 설교를 하는게 아니라 시인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말이지요. 그들은 어쩜 하나같이 ‘가진게 없어서,’ ‘운이 없어서,’ 혹은 ‘먹고 살기에 바빠서’라는 변명을 철저히 거부하고 가혹한 시간들 속에서 눈물겨운 생의 의지로 당당하게 꽃봉오리를 열어 피워냈는지요!

이 책의 저자인 류시화 시인도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홈리스로 사는 등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다고 합니다. “시를 쓴다는 이유로, 시인이 되려고 한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의 부모들로부터 접근금지 조치도 당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독을 이기려고 더 시에 매달렸다.”라고 회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세상의 변방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시를 꽃피운 시인들을 찾아내는 일을 소명으로 이 책을 엮은 듯 합니다.

상실을 안고 태어나다

이 책에 소개된 시인들은 대부분 태어나기 전부터 혹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상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태어나기 몇 주 전 아버지가 자살을 하고, 사생아로 태어나고, 두 살 때 아버지가 열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이혼을 하고, 한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평생 격리되고,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자식들을 친정에 맡기고 재혼을 하는 등의 상실을 안고 살게되지요. 또한 첫사랑과 헤어진 충격으로 정신병을 얻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시인도 있고, 스물다섯 살에 사랑에 빠져 결혼하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곁을 떠난 아내를 잃은 상실로 10년을 어둠 속에서 보낸 시인도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 공사가 공모한 시콩쿠르에서 8 천 편의 응모작 중 1등으로 당선된 작품을 쓴 오르텅스 블루 시인은 이 상실의 고통을 <사막>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쓰고있습니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서 블루 시인은 이 시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책에 싣는 걸 처음엔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그녀가 느낀 외로움은 ‘너무도’라는 표현으론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가난을 껴안고 살다

이 책에 소개된 시인들의 대부분은 생활이 어려워 닥치는대로 일을 해 생계비를 법니다. 접시닦이, 트럭 운전사, 하역부, 경비원, 창고 일꾼, 주차장 관리원, 승강기 운전원, 사료공장 직원, 도살장 인부, 제재소 일꾼, 화장실 청소부, 주유소 직원, 정육점 조수등 막노동을 하면서도 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러운 옷에 종종 밥도 굶고 신발도 없이 학교에 나타나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며 친적집이나 위탁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낸 시인도 있습니다.
뉴욕 출신의 시인 찰스 레즈니코프는 그의 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에서 이 가난한 시인들이 어려운 생활고에도 어떻게 시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나는 지쳤다./ 이제 나의 일을 해야 할 날이/ 하루 더 사라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나의 힘이 되돌아왔다./ 그래, 밀물은 하루에 두 번 차오르지.

억울한 누명을 안고 살다

어떤 시인은 한평생 몽상가와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좌파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생애의 절반을 감옥에서 지내다가 석방된 후에도 투옥을 반복하다가 결국 국적이 박탈되어 추방당해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전쟁을 반대해 배신자,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고 모든 저서가 출판금지되어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들이 피워낸 꽃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이 변방에서 상실, 가난, 억울한 누명 속에서도 눈물겨운 생의 의지로 피워낸 꽃들은 진정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흑인 여성 작가 최초로 퓰리처 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두 차례나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되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교과서에 시가 실려 사랑받게 되고, 객관주의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명성을 얻기도 하고, 평생 무명시인으로 살며 자비출판한 시집들이 사후에 꾸준히 재출간이 되기도 합니다.
시를 포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시인은 가난과 불운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문학 활동을 평생 이어 갑니다. 고아원, 감옥, 말기 환자 병동 등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도록 지도합니다. 또 한 시인은 30대 초반부터 우편배달부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 벌목한 후 버려진 땅을 싼값에 매입해 나무를 심어 그 수입을 매년 익명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했는데 자신은 닭장과 같은 집에서 극빈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또 그가 소유한 집 몇 채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를 주었는데, 다달이 월세를 받으러 다니는 대신 오히려 감자, 밀가루, 설탕, 소금 등을 갖다주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의 시 <천사와 나눈 대화>에서 천사가 당부한 삶을 온전히 살아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탄생을 주관한/ 천사가 말했다./ ‘기쁨과 웃음으로 만들어진/ 작은 존재여/ 가서 사랑하라,/ 지상에 있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류시화시인은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이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더 큰 신비가 적혀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 시집은 한 때 변방에서 고통받던 시인들이 그렇게 삶을 신비로 경험하며 피워낸 꽃들로 가득해 그 향기와 울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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