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방에서 아낌없이 주다 <어머니>

올해도 어김없이 기빙트리가 곳곳에 세워지고 따뜻한 손들이 기빙트리에 매달려있는 이름표를 떼어와 그 이름표에 적힌 리스트를 보며 선물을 준비하고 포장하면서 그 아이를 상상해보게 됩니다.

‘적힌 사이즈대로 샀지만 잘 맞을까?’ ‘좋아하는 색이 아니면 어쩌지?’ ‘ 장난감이 작동을 잘 할까?’ ‘아이는 왜 시설에 있는걸까? 가족이 전혀 없는걸까?’ ‘학교는 다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 한 켠이 싸아해집니다.

작은 선물이이라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아름다운 전통 ‘기빙트리’는 아마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실버스타인 작가의 <Giving Tree>에서 유래했을거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당입구에 해마다 세워지는 기빙트리를 보면 저는 그 동화책이 생각나고 다시 한 번 찾아서 보게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한 소년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주는 나무의 이야기이지요. 나무는 소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며 행복해합니다. 소년은 가끔 찾아와 나무에게 돈, 집, 배 등 뭔가를 자꾸 요구합니다. 나무는 소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며 행복해하지요.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가 된 소년이 찾아오고, 아무 것도 줄 게 없어서 미안해하는 나무에게 소년은 그냥 조용히 쉴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나무는 자신의 나무 밑동을 소년에게 내어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앉아서 쉬기에는 늙은 나무 밑동이 그만이야. 얘야, 이리 와서 앉으렴. 앉아서 쉬도록 해.”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맹목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나무는 우리의 어머니들을 꼭 닮았습니다. 함민복 시인은 실제로 어머니를 나무에 비유해 그의 짧은 시 ‘어머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무는/ 강풍에/ 땡볕에/ 저리/ 보이지 않게/ 그늘을/ 들고/ 있었구나 (함민복, ‘어머니’ 전문)
어머니는 겨울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고 한여름의 땡볕에 그늘이 되어줍니다. 보이지 않게, 절대 생색을 안내고 그렇게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베푼다는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으니까요.

박제영 시인의 시 ‘늙은 거미’는 할머니가 손주에게 어머니의 일생이 어떤 것인지를 이렇게 말해줍니다.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장을 뽑아서 거미줄을 만드는 거란다. 그 거미줄로 새끼들 집도 짓고 새끼들 먹이도 잡는 거란다. 그렇게 새끼들 다 키우면 내장이란 내장은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는 것이지. 새끼들 다 떠나보낸 늙은 거미가 마지막 남은 한 올 내장을 꺼내 거미줄을 치고 있다면 아가,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수의를 짓고 있는 거란다.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자신을 위해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거미줄이란다. 거미는 그렇게 살다 가는 거야. 할머니가 검은 똥을 쌌던 그해 여름, 할머니는 늙은 거미처럼 제 거미줄을 치고 있었지.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박제영, ‘늙은 거미’ 전문)

뱃 속의 내장을 뽑아 만든 거미줄로 새끼들 집을 짓고, 먹이도 잡아 먹이며 키우다가 “마지막 남은 한 올 내장”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한 거미줄을 쳐 “제 수의를 짓”다니요! 어머니의 본성은 이렇게 아낌없이 주도록 지어진 것인가 봅니다. 거미마저도.
김용택 시인은 추석에 내려왔다 서울로 올라가는 자식에게 그저 뭐라도 더 주고싶어하는 어머니 마음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차비나 혀라/ ―있어요 어머니/ 철 지난 옷 속에서/ 꼬깃꼬깃 몇 푼 쥐여주는/ 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 (김용택, ‘섬진강 17 – 동구’ 일부)

맛난 음식은 자식 입에 먼저 넣어주고 자신은 그 음식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그 거짓말을 믿는 자식을 김초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김초혜, ‘어머니1’ 일부)

한국 엄마들만은 뭐니뭐니해도 자식이 공부 잘하는 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래는 데요 윤제림 시인은 그의 시 ‘재춘이 엄마’에서 이 독특한 한국엄마들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윤제림, ‘재춘이 엄마’ 전문)

자식의 이름으로 사는 게 행복한 엄마, 무엇을 베푼다는 생각이 털끝만치도 없는 엄마, 이런 엄마들에게 자식보다 더 멋진 간판은 이 세상에 없지요. 자식의 앞날을 위해 올리는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 또한 이 세상에 없는 것이지요.

기빙트리의 계절,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도는 ‘내 어머니의 마음이게 하소서’ 라는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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