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극으로 끝난 진보정치 ‘30년 인생’

노회찬 의원,
‘드루킹 유탄’ 맞아 희생

한여름 청포도 익어가는 계절도 다 지나가고 있다. 온 지구가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사방에서 불과 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곧 여름을 장송하는 매미소리가 귀따갑게 들릴 것이다. 노염이 가는 세월을 가로 막으려고 한다. 8월이면 지구 북반부의 시카고 날씨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하늘이 9만리로 높아지면서 올해도 속절 없이 지나 간다. 세월이 유수같이 흐른다. 이제 몇 번이나 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맞이 할까? 를 생각하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올 상반기를 뒤돌아 보니, 올해는 스포츠의 해였다. 평창에서 지난 겨울에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열렸는가 하면, 여름에는 러시아에서 월드컵 축구가 갖가지 이변 속에 벌어져 ‘인류의 제전’ 답게 우리를 무척 즐겁게 했다. 특별히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이 숙원이었던 16강 진출은 좌절 되었으나, 독일을 꺾은 쾌거는 눈물의 감동을 자아냈다.

세계 랭킹 57위인 한국이 랭킹 1위 최강팀 독일과 싸워 마지막 순간(후반 45분과 48분)에 2골을 넣어 2대0으로 완패시켰다. 독일은 골키퍼까지 골문을 비우고 공세에 가담했으나 무너졌다. 1%의 기적을 이룩한 경기는 우리 생의 최고의 게임으로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구 416만 명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의 투혼(준우승)과 프랑스의 ‘아프리카 외인부대’와의 결승전도 멋진 게임이었다. 크로아티아 여성대통령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의 혼신의 응원은 감동적이었다. 축구가 지도자와 민중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평창 올림픽은 남북화해의 길을 열었고, 누가 무어라 해도 세계평화의 길을 열었다. 사상 최초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막됐다. 정치적으로도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과 이명박 구속의 책임에서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는 결과다.

불법 정치자금 받아
노회찬 투신 자살

호사다마인가? 경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6.12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무엇인가, 곧 이루어질 것 같은 변화는 오지 않았다. 미국과 북한은 협상 주도권을 놓고 기싸움을 벌였다. 그래서 미군 유해 송환, 이산가족 상봉행사 준비도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비핵화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 동안 북한을 3번씩이나 방문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속단하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요즈음 “북핵문제는 수십 년에 걸친 도전이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니 운전자의 역할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 평화번영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문 대통령은 심각한 경제 위기와, 기무사의 계엄문건 사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재판 개입-거래), 드루킹 특검 등 중단없는 적페청산에 걸림돌로 골치아픈 판에, 현 정부의 정의 실현과 과감한 개혁정책의 큰 원군이었던 노희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정치자금 의혹과 관련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 큰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노회찬 의원의 비보를 접한 문 대통령은 “삭막한 우리 정치판에서 말의 품격을 높이는 면에서도 그는 많은 역할을 했다. 정말 가슴 아프고 비통하다” 면서 오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노 의원은 천재적인 말의 연금술사다. 재치있는 말솜씨와 촌철살인의 언어를 구사, 진보정치의 격을 높이고 대중화하는데 공헌했다. 실제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한국당을 제치고 민주당에 이어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해 오랜만에 당당히 2위에 올랐다. 이런 변화가 노 의원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되었는지 모른다.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은 “나의 영원한 동지 노회찬, 그가 홀로 길을 떠났습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 하루가 그렇게 갔습니다”라고 쓰라린 감회를 피력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시간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목숨을 끊겠다는 결심을 말릴 수 있으련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은 “진보정치의 별이 졌다고 하지만, 어느 날 밤 하늘에 새로 빛나는 별이 있으면 의원님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라는 시심을 전했다. 함께 미국을 다녀온 여야 원내대표들도 그 동안 전혀 낌세를 느끼지 못했다며 그의 사망을 안타까워했다. 김성태 한국당 대표는 미국서 귀국 전날 술 한잔 마시며 오랜만에 노동운동 시절을 회고하고 즐거워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그를 추억했다. 노회찬, 김성태, 홍영표 의원은 모두 그 시절 용접 자격증을 가진 노동자 출신이다. 노 의원은 귀국하면서 “앞으로 야당끼리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해나가자”며 향후 정치일정에 협조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 메시지는 정치인 노회찬의 마지막 발언이 되었다.

드루킹으로부터 4천만원
정상적 후원절차 안 거쳐

그 동안 노 의원은 포털 댓글 여론조작 혐의를 받는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아왔다. 이에 대해 자신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한 푼의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부분이 양심에 걸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든다. 노회찬 정의당 대표는 22일 여야 5당 원내대표단과 방미 일정을 끝내고 귀국했다. 노 대표는 다음날 노모가 입원한 병원을 들른 후,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파트 17-18층 계단 창문에서 투신자살했다. 향년 62세. 기가 막히고 안타까운 일이 졸지에 발생한 것이다. 그는 정의당과 당원들 앞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유서를 남겼다.

“2016년 3월 경공모(댓글 조작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 김동원이 만든 조직)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4,000 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받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정치자금에 대한 신고절차만 받았어도 될 일을 그르친 것이 못내 아쉽다.

추모열풍 노무현 서거 방불
시카고에서도 추모 모임

노회찬의 비극적 사망을 안타까와 하는 추모 열기가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노무현 때처럼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엄청나게 번지고 있는 가운데, 미주에서도 교회나 민주인사들이 나서서 추모 모임을 열고 있다. 지난 25일 수요일 저녁, 시카고에서도 노회찬 의원을 기리는 추모 모임이 장충동 식당에서 열렸다. 광고도 없이 카톡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모임을 알렸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소규모 집회였다. 20여 명의 참석자 거의가 젊은이들이었다. 광화문의 ‘촛불’처럼 애들을 데리고 나왔다. 집회를 주선한 박건일씨는 “인물이 부족한 나라에서 죽을 사람은 살고, 살아야 될 사람은 죽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와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데 모여 서로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날 참석자들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 네이퍼빌에서 왔다는 세 아이의 어머니는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왜 난리인가? 했는데, 평소 존경하던 노회찬 의원 소식을 듣고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세월호’ 때부터 각성해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 했다며, 우리 후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시는 저런 정치인이 안 나올 터인데 안타깝다고 말하는 분도 있고, 병원에서 근무하다 옷도 못 갈아입고 가운을 걸친 채 마지막 가는 길 아이들과 인사하러 달려왔다는 젊은 의사도 있었다.

이날 모임은 인사말, 약력소개, 추모 동영상, 추모사의 순서로 진행됐다. 나는 추모사를 통해 우리 집사람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요즈음 눈물로 지샌다는 이야기와, 특검의 목적이 댓글 조작사건 수사인데, 정치적 흙탕물 속으로 엉뚱하게 불똥이 튀어 안타깝다는 점과, 인물이 부족한 나라에 비록 노회찬은 갔으나, 더 많은 노회찬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그리고 역사는 당신을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 타임스 주필

육길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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