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역사상 유일무이했던 (Sui Generis) 제인 번 시장

약관 46세의 제인 번(Jane Margaret Burke Byrne)이 전무후무한 82% 지지율로 시카고 40대 시장, 그것도 최초의 여성 시장에 당선, 취임한지도 어언 40년이 지났다. 40년이면 강산이 4번이나 바뀌었을 기간인데… 제인 번 시장과 동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녀의 1979년 4월 16일부터 1983년 4월 29일 까지의 4년 간의 시정을 어떻게 평가하였을 까? 현 21세기의 전문가들은 제인 번시장에게 어떤 학점을 줄 까?

1979년 4월 16일 막 취임한 번 시장은 부러스 (Clark Burrus) 시카고재무관 (comptroller)에게서 당장 5월 말까지 6천 4백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재정보고를 받았다.
캠페인 기간, 시카고시 재정 상태가 교묘한 회계장부 부기 (bookkeeping) 로 인해 나타나지 않을 뿐 실제적으로는 위험한 상태일 것이라는 힌트를 하였던 번 시장, 6주 안에 6천4백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어안이 벙벙 했겠지? 부러스 재무관이 신임 시장을 겁주기 위해 ‘뻥 튀기’한 것일까? 관행이 되어버린 일이니, No! 이럴 때면 전임 시장들은 의례히 시카고 시 거래은행인 First National Bank of Chicago와 Continental Illinois Bank 회장들과 조용히 만나 새로운 대출(loan)을 받곤 했다. 은행은 이자를 받으니 좋고, 시정부는 세금 등 새로운 수입이 들어오면 갚을 수 있을 터이니 조용히 처리하여 시카고 본드 등급을 유지할 수 있어 좋다. 당시 (지금도?? 글쎄…) 어느 대도시에나 있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행이었다. 시카고 주민들에게 굳이 널리 알릴 필요는 물론 없지!

그렇다면, 제인 번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우선 거창한 기자회견을 열어 전임자들의 흥청망청 무책임한 예산 집행과 그것을 부추긴 금융계와 비지니스들을 호되게 난도질을 하였다. 그리고는 대출을 받기 위해 위의 2은행장들을 만났다. 기자회견에서 몹쓸 놈 취급을 하더니 대출해 달라고? 은행장들 어떤 기분이었을까? 물론, 후에 번 시장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비즈니스 리더들의 자존심을 무마하느라 비공개 모임을 갖기는 했다. 그래도 공개적으로 매질 당하고 한 밤중에 남 몰래 약 받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한, 번 시장은 예산국장으로 노스웨스턴 대학교 헤이더 (Donald Haider)교수를 임명하고 그로 하여금 시카고 시 재정장부를 꼼꼼히 살피게 한다. 헤이더교수는 그 전해까지 파산 일보 직전이었던 뉴욕 시와 클리블랜드 시의 구조 재조정을 주도하였던 인물이다. 헤이더 국장은 장부 조사에서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일억 이백만 불($102million)의 새로운 적자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1972년부터 데일리와 빌란딕 행정부가 경상비의 적자를 특정 지정 계좌들의 자금으로 메꾸곤 했다는 점을 발견한다. 물론 이 모든 사실이 시카고 특유의 부기 (bookkeeping)로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고, 시카고 시의 높은 본드 등급은 여전하였다.

이를 보고받은 번 시장은, 또 다시 기자회견을 통해 전임 시장들의 정치적 비겁함(cowardice)을 공개적으로 난타한다. ‘시카고, City that works’는 실제로는 내년도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며 운영한 것이었다며,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한 이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호언 장담하였다. 그 결과, 시카고의 본드 등급은 두(2) 등급이나 곤두박질을 하고 시카고 시는 훨씬 더 높은 이자를 지출하지 않는 한 본드 세일로 자금 마련을 하기 어려워졌다. 흠! 그럼 어떡한다? 당연히, 긴축재정! 그래서 번 시장은, 1980년 예산에서 시청 직원 1,500명을 해고, 지출은 인플레를 훨씬 밑도는 1% 인상으로 동결하였고 1억5천만 ($150 million) 달러의 세금을 인상하였다. 이런 와중에 헤이더국장과 번 시장은 의견충돌로 갈라섰는데, 번 시장은 헤이더국장의 잘못으로 2천 9백만달러($29 million)의 세금이 초과 징수되었다고 그를 공개적으로 난도질한다. ‘돌려주면 되겠네!’하는 주민들에게 ‘아니! 이왕 징수된 세금은 무디 본드 등급을 올리는 데 사용할 터’ 했다.

이렇게 제인 번 시장의 참모진은 취임 초기부터 계속하여 바뀌었고, 그때마다 번 시장은 떠난 참모들을 공개적으로 탓하고 매도했다.

웬만하면 자신의 참모들을 감싸던 전임 시장들과 비교가 많이 되는 모습.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고 대중 인기몰이(publicity)에 전념한 것 같은 제인 번 시장의 모습은 1979년 12월 대중교통노조(transit union), 1980년 1월 교사노조(teachers’ union)와 2월의 소방노조 (firefighters’ union)의 협상/파업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979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는 때에, 제인 번 시장은, 대중교통노조에게 ‘인플레에 준한 생활비 인상’ (cost of living allowance- COLA) 조항을 축소시킬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재계약 협상을 시작한다. 시카고 역사 상 초유의 일이다.

그 당시의 미국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번 시장의 이런 무모한 듯한 행동이 이해가 간다. 1979년 미국은 제2의 오일파동으로 극심한 인플레를 겪었다. 15-20%의 이자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터. 이에 더하여, 새로 발견된 시 재정악화로 노조와의 계약을 더 이행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그리 하였겠다 싶기는 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하는 시점일까? 교통노조는 물론 ‘no way’ 하며 파업의 패를 만지작거린다.
번 시장은 노조의 파업에 맞선 긴급대책 플랜이 있다며 응수하고, 노조는 총파업을 단행한다. 아뿔사! 마련해 놓았다던 번의 긴급대책 플랜은 행방불명, 파업은 계속되니 연말시즌이 일년 매상의 절반을 차지하던 시카고 다운타운의 비지니스들이 아우성이었다. 이 파업은 결국은 비지니스의 압력으로 시 정부와 노조가 타협함으로 끝났다.

그 다음 달에 있었던 교사노조의 2주간의 파업은 이미 재정이 바닥난 시카고 교육청 형편으로 인해 시카고 시와 일리노이 주 정부가 각각 5천만 달러를 부담하기로 하고 간신히 끝났다. 그리고 한 달 후인 1980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에 시작된 소방노조의 파업은 번 시장이 아닌 노조가 시작하였다. 선거 유세 기간 소방노조에게 단체계약을 약속하며 후원을 받았던 제인 번이 시장 취임 후 열 달이 되어도 아무 소리도 없자 노조가 파업을 시작하였던 것. 이 파업은 번 시장의 이중성(duplicity)이 이슈가 되어 지저분하게 전개되다가 번 행정부의 아주 활발한 반-노조 캠페인으로 여론에서 큰 타격을 입은 소방노조가 적당히 타협하여 끝냈다.

번 시장이 세 노조와의 대결에서 얻은 것,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카고 주민들에게 제인 번은 유독 여론(대중 인기)에 민감한 시장이라는 각인과 함께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생각하고, 불가능하다 싶었던 일을 해낸 시장 (To Think the Unthinkable and Do the Undoable- Melvin Holli)이라는 인식을 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시카고 트리뷴의 번 시장의 첫 해 평가서는 업적이 과오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번 시장은 아주 중요한 정치적 자산인 주요 노조들의 협조/후원과 전문적인 참모진을 잃게 되면서 번 행정부의 정책의 빈곤함은 해가 갈수록 깊어졌다. 자연히 그 당시 번 행정부에 대한 평가는 해가 거듭 할수록 나빠졌고, 조변석개하듯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시카고 백/흑인 주민들의 성원을 잃었다.

이렇게 시정 처리 스타일이 지금까지의 어느 시장과 비교해도 달라도 너무도 판이하게 달랐던 제인 번 시장은 시카고 역사상의 돌연변이, 유일무이했던 (sui generis) 시장에 이름이 올랐다. 1983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워싱턴에게 3% 차이로 패배한 번은 1987년 다시 워싱턴에 재도전/패배하였고, 1991년 리차드 M. 데일리에 도전하여 참패를 당하였다. 이 점에서도, 제인 번은 시카고 역사상 유일무이, 돌연변이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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