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술의 길이라는 변방에서

<유재하>

무엇을 하건 음악과 함께 하는 버릇이 있어 며칠 전에도 아이튠즈 음악을 셔플로 해놓고 들으며 학생들 논문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낯선 연주곡이 흘러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펜을 놓고 읽고있던 논문에서 눈을 떼고 집중해서 그 연주곡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곡을 언제 어디서 구입했지? 음악가는 누구지? 음악파일을 찾아보고 놀랐습니다. 몇 년 전에 지인의 대학생 아들이 직접 곡을 만들고 연주하고 제작한 음반이었습니다. 지인이 한 번 들어보라고 건네주었던 그 음반은 제목도, 화려한 레이블도 없어 제 손으로 그 학생 이름만 적어놓은 초라한 음반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하고 학교 축구팀에서 맹활약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아들이 대학진학을 앞두고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지인은 가슴이 쿵,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먹고살려고..’라는 걱정이지요. 그러나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학생은 대학에서 한 2년 음악을 하다가 중단하고 이런 저런 일을 하며 혼자 곡을 만들고 연주를 하며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고 그 결실로 이 음반이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알리려는 노력도 했으나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 학생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전공하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며 학문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틈틈이 음악을 하고있으리라 믿습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은 끊을래야 끌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그 귀한 CD를 꺼내 다시 들으며 제가 좋아하는 한 음악인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단 한장의 앨범을 내고 안타깝게도25세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입니다. 자신이 부른 모든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는 가수를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라고 하는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 엘튼 존, 스티비 원더등이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유재하가 작사, 작곡, 편곡, 연주하고 부른 11곡을 모아 사재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유일한 앨범인《사랑하기 때문에》는 그 당시에는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가 되었으며, 발매 초기에도 평론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고, 음악 관계자들조차도 ‘노래가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방송 심의를 위해 PD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그 때마다 퇴짜를 맞았는데 그 이유는 거의 모든 노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정박자가 아닌 엇박자로 시작되기 때문에 박자도 못맞추는 가수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며 유재하 음악의 가치는 영화와 각종 TV 프로그램, 언론 기사에서 꾸준히 재조명되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조용필을 필두로 수많은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불렀고 저명한 클래식 연주자 리처드 스톨츠만은 자신의 음반에 유재하 음반의 타이틀곡인〈사랑하기 때문에〉곡을 수록했을 정도입니다. 후배 음악가들도 꾸준히 유재하 헌정 앨범을 발표하고 있고, 앨범 발표 당시 크게 히트하지 않았던 유재하의 노래 〈우울한 편지〉는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 삽입되어 히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그의 음반 제목을 딴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가 나와 유재하 노래의 가사를 영화를 통해 소개하고, 유재하의 노래를 통해 영화를 같은 느낌으로 끌어갔다고 합니다.

유재하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음반수익과 성금을 기탁하여 유재하 음악장학회를 설립해 1989년부터 매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는데, 이 대회를 통해 변방에 있던 수많은 인재가 발굴되고 있습니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2013년에는 대회 폐지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2014년 부터는 CJ 문화재단이 후원사로 참여하면서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국내 유일의 싱어송라이터 발굴 대회로 자리매김한 이 대회에서 수상한 음악가들의 결속력도 대단해서 이들은 자신들을 ‘유재하동문’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대회에서의 수상 경력으로 음악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유희열씨는 “유재하씨가 음대 작곡과 출신이란 걸 알고는 음대에 진학했어요. 거기 가면 그 정도 실력이 될까 하고요. 대학에 진학한 뒤 유재하 가요제에도 출전했죠.”라고 고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미국에서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안고 본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음악인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부터 미주에서도 예선을 거친 1팀이 출전해 본국에서 결선에 올라온 10팀과 겨룰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입니다. 또한 기존에는 만 18세 이상 대학생 및 대학원생만 참여 가능했지만 2017년부터는 만 17세 이상 신인 싱어송라이터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기회의 폭을 넓혔다고 합니다.

11월 11일에 있을 제 29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에는 총 750여팀이 지원해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1차 서류 심사와 2차 실연 심사를 거친 국내 10팀과 미주 예선을 통과한 1팀등 총 11팀이 본 무대에 올라 관객들 앞에서 연주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유재하의 앨범《사랑하기 때문에》에 대한 평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올해는‘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유재하가 떠난지 31년이 되는 해에 그렇게 한국 대중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이를 이렇게 해석해줍니다: “비평가 척 클로스터먼은 로큰롤 즉, 현대 대중음악이 작가의 의도보다 관객의 반응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렇게, 다른 뛰어난 작품들이 그렇듯,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관객으로부터 새로운 평가를 획득하며 훌륭하게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음악, 아니 모든 예술의 길은 끝없는 변방의 연속인듯 합니다. 그러나 유재하는 그의 음악으로 보여줍니다. 할 수 있다고. 하라고. 언젠가는 인정받는다고. 지금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그 귀한 첫 음반을 낸 무명의 청년 음악인에게 음악의 열정을 내려놓지 않는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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