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음식 이야기

미국에 산 세월이 쌓이고 나이 들어 갈수록 한국음식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은 나만의 경우일까? 그 많고 많은 음식 중에, 또 식당 중에서 특별한 경우 아니면 그저 한식 쪽으로 밀고가게 되니 이건 뭐지? 미국에 이토록 오래 살아도, 또 미국음식이나 다른 문화권의 음식들에 제법 익숙해 있어도 그저 아무리 먹어도 속 편하고 질리지 않는 건 한식이니 죽어도 미국사람 되기는 그른 모양이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돼서, 그리고 젊어서는 외식을 하려면 되도록 한식당을 피하고 미국식당이나 이태리 식당 쪽으로 방향을 틀었었다. 하긴 미국에 무슨 미국음식이라고 있기나 한가?

스테이크나 햄버거, 샌드위치 아니면 우리 일상에서 이렇다 하게 미국음식이라고 마주칠 일이 없으니. 중국, 일본, 월남, 태국, 멕시코 음식 등이 기세 등등하게 미국 50개주를 휩쓰는 것이 이 나라의 외식문화이다. 미국 어디를 가도 구석구석 태연자약하게 버티고 있는 후랜차이스 식당들. 하기야 다른 나라들이라고 양상이 많이 더 다른 것도 아니니 외식문화에 관한 것은 접어두고 집 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

집 밥이라고 하면 우선 어머니의 손맛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다. 누구나 자랄 때 어머니가 해준 음식 맛을 제일로 치고 살 것이다. 어머니가 음식솜씨가 좋은 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머니의 음식은 사람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이고 고향의 맛인 까닭이다. 외지에 나가 있다가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가 먹는 어머니의 음식 맛을 무엇에 비교하랴?

나의 어머니는 손맛이 좋은 분이었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은 한국이 워낙 어려웠던 시절이라 식 재료나 양념 등이 귀하던 시절인데 무슨 음식을 하시던 맛깔스럽게 해서 푸짐하게 밥상을 차리는 재주가 있으셨다. 별안간 손님이 들이 닥쳐도 후다닥 부엌에 들어가 짧은 시간에 술상이나 밥상을 먹을만하게 차려 내오시곤 했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대개 그랬듯이 된장, 고추장, 간장은 반드시 절기에 맞추어 담그셨고 온갖 김치, 장아찌, 젓갈 등도 솜씨 있게 담가서 비축(?)해 놓고 있다가 밥상을 허전하지 않게 꾸미곤 하셨다.

워낙 제사가 많은 집이었기에 시시때때로 제사상을 보는 것도 큰일이었는데 하긴 제사 때나 불고기 맛도 보고 생선전 맛도 보는지라 어머니는 힘드셨을지라도 우리는 제삿날이 가까워지면 모두 은근 신나고 약간은 흥청거리는 기분이 되곤 했다.

제삿날 4,5일 전부터 마당에 가마니 펴놓고 기왓장 가루로 놋 제기 닦기 시작하고 장보러 가고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남자만 5형제였던 우리는 자연 조금씩은 거들게 되었다. 놋그릇 닦고, 맷돌 돌리고, 전 부치고 밤 까는 일, 향나무 깎는 일 등을 분담하였던 기억이 난다. 제사장은 볼 게 많아 동네 장으로 가지 않고 동대문시장까지 전차를 타고 다니셨다. (그게 언제적 얘기야?) 막내인 나는 종종 어머니를 따라 장에 가서 장바닥에서 파는 막국수를 얻어 먹었는데 그래 그런지 지금도 몹시 국수를 좋아한다.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음식 쇼와 먹방쇼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며 우리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음식 전문가들이 내어놓는 레시피와 쿠킹 북 등의 홍수 속에 떠밀려가며 살고 있다. 웬 놈의 이름도 모를 양념들은 그리도 많은지? 무슨 20분 후닥닥 메뉴라고 쿠킹 쇼에선 쉽게 보여주어도 막상 해보려면 한 시간은 걸리기가 다반사인 간단한 음식들. 그런 쇼들에서 조금씩 아이디어를 얻을 순 있지만 궁극적으로 음식은 내 입에 맞게 응용을 하고 조리과정이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음식도 손맛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어 같은 재료로 해도 사람에 따라 음식 맛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고. 바야흐로 현대사회는 전통음식이라는 것이 모두 소멸하여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의적인 음식들이 넘쳐난다. 이름하여 퓨전 아무개라고 하는 것들이겠는데 요즘은 개량한식이라는 것도 많고 (한식의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특히 뉴욕 쪽에서는 한식이 많이 떠서 김치나 고추장을 살짝 차용해서 쓰는 미국셰프들도 드물지 않게 있다. 정통 불란서 요리라는 말이 그토록 고급스럽고 비싸게 들리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게 요즘 시각적으로나 맛으로나 정통 불란서식 저리가라 할 음식들이 유명 셰프들 손끝에서 디자인되어 돈 많은 고객들에게 서브 된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철철이 유행을 선도하듯이 톱 랭킹에 있는 셰프들은 자기 브랜드라고 해도 좋을 음식철학(?)과 창의력을 가지고 무슨 공예품 만들듯이 음식을 만들어 일반인들은 놀라 자빠지게 비싼 가격으로 음식을 내어 놓는다. 많은 유명 셰프들이 아시아의 전통음식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람 머리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순도 100%의 창작이라는 것이 쉽지가 않고, 더구나 아시아에 비만인구가 흔치 않은 점에 착안하면 영양과잉의 미국인들에게 먹히는 아이디어 아니겠는가?

기가 질리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우아 넘치는 식기에 흔치 않은 재료로 한껏 추상화처럼 셋팅한 음식을 아주 조금씩만 담아 내밀며, 메뉴도 없이 그날 들어온(셰프가 직접 재배하는 농장에서 보내온) 신선한 재료만을 선별해서 디자인하여 내어놓는 식당들이 드물지 않게 여기 저기 솟아나고 있다. 사람 사는 게 워낙 층이 많아 그런 식당 문전에도 못 가보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나를 포함하여) 돈 많은 분들은 새 옷 사 입듯이 유유히 출입들을 하신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나는 조선간장(진간장 이란 것이 없던 시절) 에 온갖 양념으로 재어서 숯불풍로위에 석쇠에 끼워 구어 먹던 그 옛날 어머니의 불고기와 동네 시장에서 해질 무렵, 떨이로 사다 구어 먹던 꽁치와 갈치가 더 생각이 날까?
그 오만한 1인당 $300의 코스요리보다 작년, 서울 연대골목에서 먹었던 3천원짜리 멸치국수도 새록새록 생각나고…..

“아이구 팔자하고는, 생전 소원이 시레기 죽이라더니, 아니 그 맛있는 것 다 제쳐두고?” 어른들이 우스개 소리로 빗대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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