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초의 여성시장 당선 정치머신의 몰락?

흔히, 시카고 정치의 반항아/애숭이 (maverick/novice) 제인 번 (Jane M. Byrne)이 현직 시장으로 시카고 기득권 그룹들의 적극 후원을 받던 마이클 빌란딕 (Michael A. Bilandic)을 16,675표 차이로 물리치고 시카고시장 민주당 공천을 따낸 1979년 2월 27일의 민주당 예비선거는 그야말로 경천동지 (stunning, earthshattering)할 사건이라 한다. 그래서 이를, 많은 이들이 서슴치않고 시카고 정치의 혁명(?) 내지는 역사적 지각변동이라 부르고는, 곧장 거의 반세기동안 시카고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정치머신 (Cook County Democratic Party-CCDP)은 이제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졌다며 bye, bye손을 흔들었다.

제인 번의 1979년 예비선거 이슈는 오직 하나(1)- 1월 한달 시카고를 마비시켰던 폭설 (blizzard)-이다. (시카고역사 #92참조). 아이러니컬하게도, 1979년 2월 27일은 햇빛이 화창하고 따뜻해서, 그동안 빌란딕에게 불만이 있던 투표권자들- 흑인, 폴리시 백인, 레익프론트 백인 리버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투표권 행사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고 한다. 그래서 시카고주민들은 ‘1979년2월 마이클 빌란딕은 억수로 재수가 없었던 사나이’ 라고 한다. 그러니까, 16, 675표 차이의 승리는 ‘제인 번 찬성’ 보다는 ‘마이클 빌란딕 반대’ 이었다는 말이다. 공천이 확정되자, 번은 “오늘 밤 시카고 주민들은 스스로 속박을 풀고 자유를 얻었다(The people of Chicago freed themselves tonight)” 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슨 의미? 빌란딕의 재임은 고작 2년 남짓인데… 혹시? 철권시장 데일리의 억압에서의 해방? 그럴 리는 없겠지?
많은 이들이 제인 번의 성명을 ‘반-빌란딕 투표는 궁극적으로는 반-정치머신 (CCDP) 이다’ 라고 받아들였던것 같다. 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 번은 ‘오늘 나는 머신 (CCDP)을 맨 손으로 굴복시켰다’며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다윗이 된 양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였다고 한다. 1933년생, 5피트 3인치의 제인 번이 기득권의 후원없이 1923년생으로 시카고 기득권의 후원을 받은 5피트 9인치의 빌란딕을 이겼으니, 흥분할 법도 하다 싶고, 번이 1931년부터 한번도 시장 선거에서 실패하지 않았던 CCDP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사실이니, ‘다윗과 골리앗’ 비유가 타당하다 싶기도 하다. 그래도 번은 리차드 데일리가 추천하여 CCDP의 멤버가 된 아이리시로서 최소 시장에 취임하기까지는 CCDP 멤버십을 유지하고 있었었는 데… 여하튼, 정치머신으로서는 제인 번이 ‘괘씸’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16,675표는 ‘새 발의 피’ 아닌 가? 그리고 아직 4월의 시장 일반선거가 남아있어” 하며 빌란딕에게 4월의 일반선거에 나올 것을 종용한 머신을 포함한 기득권 그룹들이 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은 승자가 지역구를 차지하는 winner-take all 시스템에서 번은 29개 지역구를, 빌란딕은 21개를 차지하였었으니, ‘해볼 만한 정치적 계산’ 아니었나 싶긴 한데, 젠틀맨 빌란딕은 극구 사양한다. 이로써 빌란딕은 철권시장 리차드 J. 데일리의 후계자/왕세자 시장, 그리고 CCDP 멤버십을 유지한 마지막 시장으로 남았고, 번은 시카고 최초의 여성시장의 영예(?)를 얻는다. 시장에서 퇴임한 빌란딕은 1990년부터 일리노이 대법관, 1994년부터는 대법원장이 되어 78세로 2002년 1월 15일 사망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이미 언급한대로, ‘민주당 천하’인 시카고에서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제인 번은 4월 일반 선거에서 ‘시카고에 새로운 시대가 왔다’ 며 공화당 후보 존슨 (Wallace Johnson)을 기록적인 82% 차이로 따돌린다.

시카고의 파라오, 리차드 J. 데일리의 전성시기에도 없던 지지율이다. 이만한 지지율이면 주민들의 절대적인 위임장(mandate)을 받았다 할 법도 한데, 제인 번의 1979년 4월 16일부터 1983년 4월 29일 까지의 4년 간의 시카고 시정은 처음부터 실망과 좌충우돌로 시카고를 휘저어 놓은 듯하였다. 왜 그랬을까? 제인 번은 실제 정책 내용보다 스타일만 중시하였던 것일까? 제인 번의 4년간의 시정을 샅샅이 살펴볼 수는 없지만, 큰 그림을 보는 시도를 2번에 걸쳐 하여 보겠다.

제인 번의 캠페인 매니저는 로즈 (Don Rose). 당연히 그가 제인 번 승리의 일등 공신이다. 그는 잘 알려진 개혁파 시의원 오버만 (Martin Oberman), 심슨 (Dick Simpson) 그리고, 싱거 (Bill Singer)들과 함께 제인 번의 미약한 캠페인을 리드하면서, 시카고 정치머신의 악함과 시카고 시의회를 좌지우지하는 몇 몇 악인들의 음모론 (cabal of evil men) 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제인 번이 캠페인 내내 자주 사용한 것은 당연지사. 마치 자신이 승리하면 시카고를 이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겠다고, 아님 최소한 시의회에서의 새로운 정치 질서를 약속하곤 했었다. 제인 번은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공천 확정된 후, 위에 열거한 보좌관/후원자들과 노스웨스턴 대학교수 마소티 (Louis Masotti)에게 ‘transition report’ (새 정권 인수 보고서)를 위임한다. 시카고에서 일반선거는 그저 요식 행위이니까, ‘아직 시장 당선도 안 되었는 데? 하는 분은 없으실 터.

꽤 방대한 분량의 이 보고서는 쓰러져가는 국가 경제를 중흥시킬 5개년 경제 계획처럼 시카고 시의 정치 구조를 특히 시의회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 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미국 대도시 중에 유일하게 정치머신이 남아있고, 가장 인종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시카고에서 이런 개혁이 가능하다니… 데일리 밑에서 개혁을 목말라 하던 개혁파들에게 이 보고서는 믿기 힘들 정도로 훈훈한 봄 향기였다고 한다. 시의원에 재선된 오버만의 사무실을 찾은 제인 번은 ‘시카고 주민들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갈망한다’ 며 오버만과 시의회의 위원회를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지 열심히 의논하기도 한다.
모두들, 개혁이라면 동토 (꽁꽁 얼어붙은 땅) 였던 시카고에 이런 날이 오다니 ‘오메 좋은 것’ 하며 아주 기뻐했다고 했다. 그런데….

제인 번이 시장에 당선되고, 이 보고서가 완성되어 번에게 제출된 직후 부터 아예 기대치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번이 이 보고서를 읽어 보지도 않고, 실행에 옮기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참다 못해 보고서의 주 저자 마소티 (Masotti)교수가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모두 개혁이라는 꿈을 위해 무보수로 보고서에 참여하였던 이들은 번 시장에게 완전 찬밥 취급을 받았고, ‘개혁? 꿈도 꾸지 마!’ 하는 듯한 번 시장의 태도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 멘붕 상태에 빠졌다.

이렇게 제인 번은 시카고의 개혁안을 개봉도 하지 않은 채로 사장시켰다. 그리고, 번은 말로만 개혁, 개혁하지만, 실행할 의지는 없는 시장으로 초반부터 낙인 찍히게 되었고, 번 행정부에 동참했던 개혁파들을 모두 잃게 된다.

더 기막힌 것은 이러한 정책의 공허함이 4년동안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번은 머신의 충성분자 시의원들에게 시의회 위원회를 맡겼다. 번은 왜 이렇게까지 안면몰수 한 듯한 모습을 보였을까?

혹자는 바로 그것이 ‘갈대같은 여자’의 마음이라며 비웃기도 했지만, 번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시카고 시의회의 현실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제인 번 시장이 당면하였던 그 당시 시카고 시의회에는 번의 개혁을 지지해 줄 그룹이 너무도 미약했다는 것. 시의회를 움직여야 시정을 펼칠 수 있는 현실이니, 번이 (매도하던)머신과 손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돌아서지는 말았어야지 하는 이들도 있고, 1979년의 악화되는 미국(시카고)경제를 탓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유이든지, 제인 번은 최초의 여성 시장 그러나 단임 시장으로 끝났다.

지금 캠페인이 한창인 예비선거에서 프랙윙클이 공천을 받으면 두 번째 여성, 그것도 흑인시장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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