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친 구

친구하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친구의 범위는 넓다. 그러나 사람이 한세상 살며 가족 이외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친구들인 것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그립고 허물없는 친구들은 고교시절의 친구들일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이 분명했던 시절, 그래서 때묻지 않은 감정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의기 투합했던 사춘기의 친구들이 일생을 가는 친구들인 경우가 많다. 대학과 군대시절을 거치며 또 한 겹 두 겹의 친구들이 생기긴 하지만 고교시절 친구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친구가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 다른 경험을 하면서 살게 되니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이후 사회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경쟁자가 되니 순수하게 마음을 주고 받기가 어려워진다.

이민사회의 친구 관계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모임이나 교회, 사회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 이민 전에 산 세월들이 다른지라 공통분모가 없다 보니 쉽사리 터놓게 되질 않는다. 이민 초기나 중기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어느결에 멀찌감치 사라져버린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멀리 이사를 가서가 아니라 잘 지내다가 사소한 문제로 의견이 대립되거나 마음을 상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생활이 재미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마음 터놓고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고 보아 진다. 고교 동창회에 동기생들이 여럿 있는 사람들은 제법 재미있게 사는 모습들을 보았다. 이민사회에서 야, 자, 해가며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 흔치가 않다.

사람이란 잘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도 있고 성격이라는 것도 여간 해 고쳐지지 않는다. 살면서 환경이나 교육에 의해 자기가 타고난 성격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술과 지혜가 생기긴 하지만 타고난 성격은 그 자리에 버티고 있기 마련이다. 어릴 때 사귄 친구들은 서로의 다른 성격들이 친구가 된 주요인이 되는지라 웬만하면 이해하고 양보하게 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서로 다른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빌미가 되어 등을 돌리게 되는 수가 많다. 성격이 맞질 않아 이혼을 하는 부부들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 되려나?
가끔 한국을 방문하면 꼭 만나는 고교시절 친구들이 있다.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친구도 있고, 잘 나가다가 말년에 좀 어렵게 된 친구도 있는가 하면 그제나 이제나 자기분수를 지키며 조용히 사는 친구도 있다. 그나저나 어찌 그리 성격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고교시절과 똑같은지. 어디서나 떠들썩하던 친구는 아직도 모이면 왁자하고 매사에 침착하고 조심스럽던 친구는 지금도 그러하다.

하긴 그 각각 다른 성격들이 나를 친구로 잡아당긴 요인이었다. 나의 깔깔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가감 없이 받아 주었던 친구들. 그게 모두 언제적 일이길래 기억들을 하고 있는지 지각을 잘하던 내가 교실 들어서면서 바로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맞고 벌을 서던 이야기하며, 너는 국어시간이 네 시간이었지 라고 추켜주기도하고, 대학시절, 군대시절, 사회생활을 각자 거치면서도 서로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져 온 오래된 우정의 세월을 얘기하며 회포를 풀곤 한다.

친구란 무엇일까?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한마음으로 기뻐해주고, 걱정해주는 가족 이외의 존재, 때론 가족보다 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내가 미국에 와 살아낸 40여년간 한국땅에 남아 어려운 세월을 견뎌내고 오늘의 번영하는 한국을 만드는 주역이 되었던 세대. 온갖 국가적인, 개인적인 부침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버티고 살아준 친구들, 갈 때마다 따듯하게 맞아주는 그들, 그 옛 친구들이 문득 이토록 그리움은 웬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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