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바이러스 공포 그리고 <기생충> 아카데미 4관 왕

100년 전에 발생했던 스페인 독감

지금부터 100년 전 1918년 세계 1차 대전의 총성이 서서히 멎어가던 그 때, 전에 없던 세계적인 독감 바이러스가 영국령 제도를 휩쓸기 시작했다. 그 독감은 참전 중인 군인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전염병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영국의 데비드 로이드 총리도 독감을 앓았다. 그 해 9월 11일 연합군의 잇따른 승전보에 한창 고무되어 있던 로이드 총리는 맨체스터를 방문했다. 탄약을 비롯한 군수품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휴가 중인 군인들까지 환영하러 나온 인파가 피카딜리 기차역부터 앨버트 광장까지 가도를 가득 메웠다.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로이드 총리는 갑자기 목이 따갑고 열이 나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스페인 독감이다. 이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1918년-1919년 사이 세계적으로 2,500만-5,000만 명이었다. 이 수는 1차 대전으로 사망한 1,500만 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2011년에 필자는 아내와 맏딸과 함께 런던을 여행한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이 머문 호텔은 런던의 중심가인 피카딜리 거리에서 전철로 다섯 정거장 떨어진 곳이었는데, 어느 날 그곳 역사박물관에 들렀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부터 100년전인 1918년에 우리가 머물었던 그 지역에 스페인 독감(Spanish influenza)이 발생하여 영국에서 1만 22만 8000명 가까운 사람이 죽었고, 그리고 그 독감의 전염을 막기 위하여 런던시는 그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발견한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1918년 3월에 스페인 독감이 발생했던 발원지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카고 부근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 100년 전에 발생했던 스페인 독감 발원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랜다.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심

중국 우한 시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세계가 두려워하는 전염병이다.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이나 동물계에 광범위한 호흡기 및 소화기 감염을 일으키는 치명적 바이러스로.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혐오감을 불러오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 포비아(공포증)’이란 신종어가 등장하였다. 포비아(Phobia)란 단어엔 공포증이란 뜻 말고도 ‘혐오감’ 이란 뜻도 있다. 그래서 시노포비아(Sinophobia) 또는 제노포비아(Xenophobia)라는 신종어도 등장했다. 시노포비아는 중국을 지칭하는 라틴어로 중국혐오란 뜻이고, 제노포비아란 외국인 혐오란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병으로 말미암아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까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 런던 역사박물관에서 들은 이야기다. 영국에 스페인 인플루엔자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자집집마다 문을 꼭꼭 잠그고 방문자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집 밖에서 방문객이 문을 두드리자, 방 안에서 “누구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밖에서 “나 인플루엔자요!”라고 농담하자, 인플루엔자라는 말에 방 안에 있던 사람이 기절해 쓰러졌다는 이야기다. 공포심은 인간에게 인플루엔자 만큼 악성 정신바이러스다. 그런데 많은 통치자들이 공포를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공포심으로 세뇌가 되면 이성이 마비가 된다.

레드포비아(Red-phobia)는 흔히 말하는 빨갱이 공포심을 말한다. 옛날에는 공산주의가 세뇌공작을 한다고 하였는데, 요즈음 한국의 노년층들을 보면 공산주의 공포증으로 세뇌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소위 “좌빨”타령을 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많이 듣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좌빨 타령’은 많은 사람에게 웃음만 산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박물관에 있는 박제동물을 보듯 사람들은 구경한다.” 좌빨 타령은 혐오감과 불쾌감만 안겨준다고 한다. “얘들아, 저게 3공화국 박제고, 저것이 5공화국 박제다.” 그 동안 한국보수는 선거때만 되면 “종북 딱지”를 붙이기만 해도 이겼다.”고 진중권 교수는 증언하고 있다. 과거에 레드포비아로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주던 시대가 지나갔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나타나고 있다.

전염병과 면역 

기원전 400년 카르타고(그리스인은 칼케톤이라 함)는 한 때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로마와 패권을 걸었던 나라였다. 그 나라는 그리스의 식민도시를 공략하여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함락시켰다. 그러나 시칠리아 최대의 그리스 식민도시 시라쿠스는 침공할 수 없었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한번은 카르타고가 시라쿠스를 공격하여 처절한 전투를 벌려 거의 다 점령했다 싶었는데, 전선에서 역병이 발병하여 양쪽 군대가 모두 큰 피해를 입었으나 멀리서 온 카르타고 군대는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8년 뒤 카르타고는 새로운 젊은 군대를 편성하여 시라쿠스를 다시 공격하였지만 함락을 눈앞에 두고 또 다시 역병이 발병하여 다시 공격하던 군대를 철수해야 했다. 침공당한 시라쿠스 군인들은 나이가 많은 역전의 군인들이었지만, 병자 수는 적었다. 반면에, 젊은 군인들로 새로 편성된 카르타고 군인들에겐 역병환자가 속출하였던 것이다. 역사가는 이렇게 썼다. “시라쿠스 참주 디오니시오스는 전염병을 이용하여 카르타군에 대승하였다”. 시라쿠스가 도시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8년 전 전쟁에서 역병을 앓았던 시라쿠스 군인들에겐 역병에 면역성이 생겨 역병이 재발해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면역, 즉 ‘전염병은 한번 걸리면 두 번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전쟁역사를 통해 입증된 셈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엔 약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병을 굳굳히 이겨내면, 면역성을 길러 스스로 약을 얻게 된다.

<기생충>이 최고의 영광이 되다.

미 아카데미 4관 왕 <기생충>이 메스컴에 톱 뉴스가 되고 있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영화 <기생충>은 지난 해 11월 시카고 지역에서 방영되었다. 필자도 그 영화를 보았지만, 주인공에 대한 공감 능력(empathy)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영화에 몰입하기 전에는 한번 슬쩍 스크린으로 지나간 장면만으로는 무엇이 주제인지 잘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영화는 계층으로 나누어진 현대사회의 최하층 구조 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애쓰는 삶의 심층을 소개하고 있다. 착하게 살면 당하고 적당히 남의 뒤통수를 치면서 자기 밖에 몰라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기생충이 바로 그렇다. 기생충은 사람이나 가축에 기생하여 병해를 일으키는 혐오스런 생물이다. 기생충의 이미지다. 삶에 다이내믹스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낮은 계층의 혐오스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기생충이 최고의 예술로 미 아카데미 4관 왕으로 상을 받게 됐다.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이다. 박근혜 정부는 봉준호 감독을 좌파 감독, 그가 만든 영화를 좌파영화로 부류하여 예술계 불랙리스트에 올렸다, 그 이유는 국민의식을 좌경화시켰다고 본 것이다. 정부에 대하여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시켰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선 사회비판을 하면 무조건 좌빨이라 불렀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 레드포비아 때문이다. 비평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그러나 공정히 비평할 수 있는 윤리가 있어야 한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는 비평이 아니다. 현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만행이다. “이 정권을 때려부수자”고, 계란으로 바위를 때려부순들 말대로 되나?

환난은 소망을 낳는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을 두고 세계는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정부의 신속한 정보공개와 침착한 대응에 한국을 배우자는 칭찬일색인데, 한국 국내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뿐만 아이라 사회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8일 미국인 여행자를 위한 주요국가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을 안전한 나라 ‘레벨1’로 분류했다. 한국정부의 감염병 대처에 대한 국제언론의 평가는 매우 높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안일함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오히려 국민에게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도 부족한데 정부가 중국에 마스크 300백만 개를 지원했다”고 가짜뉴스도 퍼트린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박근혜 정부 당시 2015년 처음 중동지역에서 유입된 메르스 때는 늦장대응으로 감염이 186명 사망자가 38명의 인재를 불러왔다. 이 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빠른 대응책이다. 아직까지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450년 페스트가 유행하여 영국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그러나 환자를 간호했던 수도승들은 병에 걸려도 회복되었고 그들에겐 페스트가 한창 만연하고 있어도 두 번 다시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성서에 “환난은 소망을 낳는다”는 말씀이 있다. 이유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을, 단련은 희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려움을 극복하기는 힘들지만,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면역성이 된다는 뜻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공포의 대상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생충의 혐오는 이미지만은 아니다. 기생충 같은 혐오감을 주는 삶도 견디고 이겨내면 아카데미 4관 왕과 같은 영광스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하기를 “인간이 지닌 가장 악한 감정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인데 이것은 사악한 즐거움이란 뜻이다. 즉 타인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즐거워하는 심술궂은 마음은 가장 악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으로는 <기생충> 영화를 본들 잘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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