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83년의 시장선거 캠페인 해롤드 워싱턴 시장(1)

해롤드 워싱턴 (Harold Lee Washington)이 1983년 4월 시카고 시장에 당선되어 시카고 41대 시장, 그것도 시카고 시(city) 150년 역사 최초의 흑인 시장이 되었던 사실은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계시리라.

워싱턴의 시장 당선이 시카고 정치계에 주었던 충격은 크다. 남성 시대가 끝나더니 이젠 백인 시대가 끝났다며 요란을 떨기도 했고, “Save Chicago (시카고 구하기)’ 구호가 난무하며 시카고정치머신 (Cook County Democratic Party-CCDP)의 ‘워싱턴 물 먹이기’ 가 본격적으로 풀 가동되었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워싱턴시장의 1983년4월29일부터 1987년11월25일까지 4년 7개월에 걸친 재임을 살펴볼 예정인데, 그 첫 번째인 오늘은 1983년 선거에서 워싱턴이 당면하였던 시카고의 인종주의 (racism)를 보려 한다.

3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인종주의는 웬 일로? 이는, 필자가 최근 다시 살펴본 워싱턴시장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잘 알려진 아버지 데일리 평가의 다양성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특히, 평소에 균형 잡힌 시카고역사 연구라 여겼던 몇몇 저서에서 베일에 싸였으나 분명히 상반된 평가를 접했던 것은 필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이럴 가? 고민 끝에 내린 잠정적 결론은, ‘워싱턴시장으로 인해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백인과 흑인 간의 정치 전통 내지는 파워 구조가 정면으로 부딪쳤기 때문’이고, 그 근저에는 흑인차별의 사회풍조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오늘은, 1983년 선거 캠페인에서 표출된 인종주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선, 전체적인 상황(context)에 관해 두(2) 점을 간단히 살펴보자. 첫 째는, 1983년이면 민권/투표권 연방법 (Civil Rights Act of 1964/Voting Rights Act of 1965)이 통과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란 점.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내내 로스안젤스의 브래들리 (Tom Bradley)를 포함하여 미국 여러 대도시에서 흑인 시장이 선출되었으니 1983년 흑인시장 선출에 대하여 시카고사회가 좀 더 준비가 되었어야 했을 것 아닌가 싶다. 둘째는, 시카고 정치머신 (백인)이 급격히 성장하는 흑인(비 백인)커뮤니티를 어떻게 대처하였나? 하는 점. 거주지 흑백차별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인종적이었던 시카고에서 백인들은 흑인지역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흑인 커뮤니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관심도 전혀 없었다. 단지 머신에 충직한 캡틴을 통해 콩 고물을 적당히 나누어 주지만 구조 상의 차별은 완전 외면하는 전형적인 ‘분열시켜 지배하기 (divide and conquer)’ 만을 고수하였다. 이에 더하여, 흑인을 시청 리더십에 임명했다가 백인의 작은 반발에도 철회했던 제인 번의 정책으로, 시카고 흑인들은 로칼 정치에는 무관심하였고, 투표율은 급속한 내리막이었다. 그래서인지, 시카고 백인사회는 흑인지역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흑인사회를 분열시켰던 과격파 (nationalist)와 온건파 (coalitionist)가 1983년 선거에서 연합전선을 펼친 점을 제때에 눈치채지 못했다.

제인 번 현직 시장이1983년 시장선거 출마를 공표하였을 때, 시카고 흑인리더들은 ‘이번에는 흑인 차례’ 라는 점에 공감하며 워싱턴에게 (흑인) 단독 후보 제안을 한다. 이에, 워싱턴은 2가지 수락조건을 내건다. 첫 째는 5만명의 새로운 흑인 투표자 등록이고, 둘째는 그 당시 전국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시카고 흑인 잭슨 목사(Rev. Jesse Jackson)의 공식 후원이다. 1983년 민주당 예비선거 이전에 14만명의 새로운 (흑인)투표자 등록이 있었으니 첫째 조건은 ‘No Problem!’ 두 번째 조건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최초의 시카고 흑인시장에는 잭슨 목사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잭슨목사 본인을 포함하여 흑인사회에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카고 흑인리더들은 공주병이 좀 심했던 잭슨 목사로서는 백인들의 후원을 끌어낼 수 없다는 판단을 하였다.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자는 설득을 받아들인 잭슨목사, 드디어 워싱턴 후원을 공식화 한다.
워싱턴이 머뭇거리는 동안, 민주당 예비선거는 33명 시의원의 후원을 받았던 제인 번 현직 시장과 쿡 카운티 검사장 리차드 M. 데일리의 2파전이었다. 새로이 출마를 선언한 워싱턴에게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번과 데일리는 흑인지역(South Side)은 깡그리 무시하고 백인지역에서만 선거 캠페인을 벌렸다. 이에 뿔난 흑인들 워싱턴 승리를 위해 똘똘 뭉친다. 흑인사회에서 헤게모니경쟁을 벌려왔던 과격파 (nationalist)와 온건파 (coalitionist)가 연합, 다운타운과 레익프론트의 백인 리버랄지역은 온건파가, 그리고 흑인지역은 과격파가 선거유세를 각각 담당하며 구호도, 포커스도 다른 캠페인을 벌렸다.

2월 22일 민주당 예비선거 한 달 전 드디어 워싱턴이 승리할 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깨달은 CCDP가 내놓은 정치적 전략은 인종 (race) 이슈를 확실하게 표면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머신의 보스였던 보돌리악 (Ed Vrdolyak)은 흑인 후보가 나오면 시카고 최악의 날이 된다며, ‘데일리에 투표하는 것은 곧 워싱턴 지지,’ ‘예비선거의 유일한 이슈는 피부색’ 등의 원색적인 선동을 계속하였다. 이에 대한 워싱턴의 반응이 일품이었다. 인종이슈를 회피하라던 일부 참모들의 진언을 거부하며, 워싱턴은 “… 나의 출마목적은 인종주의 정책을 조직화시키고 있는 제인 번의 정책을 뒤엎기 위한 것’이라며 비백인들의 호응을 끌어낸다.

민주당 예비선거 투표결과는? 물론, 워싱턴의 승리! 그는 424,000 표(36.3%)를 받아, 388,000표 (33.6%)를 받은 번 현직시장과 345,000표 (29.7%)를 받은 데일리를 제치고 민주당후보가 되었다. 이리하여, 시카고에서 일반선거는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하였던 과거와는 달리 1983년 4월 12일 시카고 시장 일반 선거는 아주 흥미진진 (?) 해졌다. 그 당시 시카고 유권자들의 78%가 민주당원. 흑인인 워싱턴 민주당 후보와 백인인 엡턴 (Bernard Epton) 공화당 후보가 격돌한 선거에서 시카고의 백인 민주당원들 누구를 선택했을 가?

리버랄 레익프론트 지역에서 유태인 변호사 출신 시의원으로 진보적 사회정책을 지지했던 엡턴은 ‘내가 백인이기에 나에게 투표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 하며 극구 만류하였지만, 민주당 예비선거와 마찬가지로 일반선거의 유일한 이슈는 ‘피부색’이 되고 말았다. “Vote right-Vote white” (옳은 투표는 백인에게 투표하는 것)란 문구를 적은 티셔츠를 입은 백인들이 돌아다니는 가 하면, 전 부통령 먼데일(Walter Mondale)이 워싱턴 선거 유세차 센트 파스칼 카톨릭 성당에 갔을 때는 성당 문에 “NIGGER DIE”라는 문구가 페인트 되기도 했고, TV는 노골적으로 편파적으로 인종적인 선거광고로 뒤덮였고, CCDP의 리더들이 공개적으로 엡턴을 지지했으니 ‘엡턴 후원 민주당원 (Democrats for Epton)이란 피켓은 다반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니, 엡톤 캠페인의 구호, “Epton for mayor. Before it’s too late” (너무 늦기 전에, 엡턴을 시장으로) 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인종적 함의(connotation)를 갖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았을 가?

1983년 일반선거에서 워싱턴은 668,176표 (51.7%)를 받았고, 엡턴은 619,926표 (48%)를 받았다. 1백3십만의 유효 투표에서 워싱턴의 승리 마진은 48,250표에 불과하여 역사상 가장 아슬아슬했던 시장 일반선거로 기록되었다. 불과 4년 전에 일반선거에서 82%의 지지를 받았던 최초의 여성시장 제인 번에 비하면 최초의 흑인 시장 당선이 얼마나 더 험난했던 가를 여실히 보여준 선거였다.

시카고 흑인의 투표율은 73%, 그중 95% 가 워싱턴 지지였고, 백인의 투표참여율은 67%, 그중 88%가 엡턴을 지지하였다. 히스패닉 82%가 워싱턴에게 찬성 표를 던지며 캐스팅 보드로 급부상한 선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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