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갈등

갈등의 시작은 나의 섣부른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2주전, 상태가 아주 안 좋은 형님의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와서 돌아가시기 전에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골몰한 나는 깊은 생각없이 임신 6개월째인 뉴욕의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만약 네가 원하면 큰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매그놀리아(17개월 된 딸)를 데리고 한번 방문하면 어떻겠니?”라고 하였다. 물론 ‘너희 엄마가 같이 따라갈 거고, 담당 의사가 괜찮다고 하면’…이란 단서를 부쳐서. 형님이 전부터 매그놀리아를 많이 보고 싶어 했던 것이 큰 이유였다. 며칠 후 딸아이는 의사가 가도 좋다고 하더란 얘기를 전하면서 직장에서 허락을 받아보겠다고 하였다. 바로 얼마 전 2주의 휴가를 받아서 쓴 직후인지라, 집사람도 갈려면 바로 지금이라고 하면서 더 늦으면 갈수 없으니 서둘러 추진을 하자고 하였다. 게다가 아들아이까지 적극 가겠다고 하였다. 장례식엘 가느니 아직 살아계실 때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아들도 바로 3주 가까운 휴가에서 돌아 온지라 직장에서 특별휴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두 아이 모두 허가를 받아내고 갈 날짜를 잡아야 될 양으로 의논 중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내게 전해들은 조카(형님의 외아들)가 극구 반대를 하였다. 절대로 오지 말라고. 먼 길 와봐야 아버지가 방문객을 반기지도 않거니와 무슨 대화가 가능한 상태도 아니니 그냥 아버지를 건강할 때 본 모습으로 기억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였다. 집사람과 아이들 모두가 일단 맥이 빠지고 조카의 강력한 반대에 마음들을 상하였다. 조카로서는 직장에 매인 사촌동생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야 되고 아직 아기인 매그놀리아와 작은 어머니까지 먼 길을 온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겠고, 83세의 노인이 죽을병 들어 오늘 내일 하는 게 무에 그리 대수요, 오려면 장례식에나 오시요, 라는 뜻이었을까?

분명 거기에는 사고방식의 차이도 존재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큰 아빠를 마지막 보러가는 것은 우리 의지이니 사촌형이 오지 말라고 할 권리가 없다, 그냥 가자는 의견이었고 한국의 조카는 작은 어머니와 통화해서 오지 마시라고 설득을 하겠다는 초강력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구러 시간이 흐르며 아들아이의 직장 일이 바빠져 10월말에나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였다.그러는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상황을 얘기하니 임산부가 죽을병 든 환자를 보러 17개월된 어린 것을 데리고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였다. 집사람과 아들아이의 동행이 필수인 딸아이의 먼 여행인데, 10월말이면 임신 6개월의 끝자락이 되겠고 같이 가야 할 어린 것과 태중에 있는 아기를 생각하니 마음이 도무지 편치를 않았다.

형님의 두 번에 걸친 미국방문과 아이들의 한국 방문시 형님이 보여준 사랑이 기억 속에 첩첩이 남아있는 아이들의 큰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마운 한편 임신 중인 딸아이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염려가 나의 마음을 급선회하게 만들었다. ‘혹여 먼 여행 중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라는 우려가 나를 사로 잡았다. ‘주었다 뺏는다’는 말이 있지만 정작 딸아이의 한국행을 애초에 제의한 게 내가 아니었던가? 딸아이의 먹은 마음을 되돌리게 해야 한다는 어려운 일이 닥쳐왔다. 타고나기를 인정 많고 앞뒤를 재지않는 성격의 딸아이가 받을 상처와 실망을 생각하니 무엇이라 말을 해서 이 난국을 벗어나나, 생각을 하다가 간곡히 이메일을 써 보냈다.
“아무리 담당의사가 오케이를 했어도 엄마와 아빠가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어려운 여행이라 생각되고 주위사람들도 온통 반대를 하는구나, 무엇보다 이 힘든 여행을 감내해야 하는 너와 매그놀리아와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자. 아무 일도 없을 확률이 크지만 혹여라도 이 힘든 여행이 빌미가 되어서 태어날 아기에게 영향이 있게 되면 절대 안 된다”고. 그러나 딸아이는 큰 아빠를 꼭 보고 싶고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시던 매그놀리아를 보여드리지 못하면 자기일생 씻을 수 없는 후회로 남을 거라고 하면서 가기를 고집하였다. 가고 오고 일주일 안에 돌아와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낼 수 있다고 하였다. 사촌오빠의 반대는 이해가 불가하니 신경쓰지 않겠다고 하면서. 아들아이도 은근히 제 동생을 부추기며 같이 가서 형네 식구들한테 폐 안 끼치고 알아서 하겠다고 하였다.

딸아이의 감정에 충실한 성격을 잘 아는 집사람과 나는 당황스러웠다. 큰 아빠의 부스러진 모습을 보고 통곡을 할 아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하였고 그런 격렬한 감정의 부침이 태아에게 줄 영향이 못내 염려스러웠다. 태어날 자식에게 영주권을 예비해주려고 만삭의 임산부들이 미국여행을 감행한다는 소리도 들었고 평소 어린 아기를 데리고 여행하는 젊은 부모들을 많이 보아온 우리로서, ‘이게 정말 딸의 여행을 반대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걸까?’ 하는 회의가 쳐들어 왔다. 평소 ‘매사에 물 흐르듯’이라는 신조로 살아온 내게 이것은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기도 했다. 저렇게 가고 싶어하면 가게 두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싶다가 다시 생각하면 새삼 염려가 치밀어 왔다. 결국 나의 걱정이 이승을 하직할 형님보다 태어날 아기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역사 오랜 형제간의 사랑보다 내 직계식솔의 건강과 평안을 지켜야 한다는 이기심.

그것이 딸아이에게 줄 실망과 오랜 세월 아이의 마음 속에 남아있을 후회를 알면서도 우리 부부가 택한 결정이었다. 집사람도 가지 않고 아들아이만 단신으로 다녀오기로 결론 짓자 아들아이는 신속하게 비행기표를 끊었다. 결정은 그렇게 했어도 딸아이의 안타까운 심정이 보여 마음을 편치않게 하니 이 애비의 갈등을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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