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차드 J. 데일리 시대 (9)

갑작스러운 리차드 J. 데일리의 사망으로 멘붕에 빠진 시카고

1976년 12월 20일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듯 모두들 일찍부터 바쁘게 움직인 월요일이었다. 시카고의 겨울 답게 매섭게 춥지만 쾌청한 날씨.
‘시카고가 나의 전부’ 라는 74세의 workaholic 데일리 시장이 여기에서 빠질 리가 없지! 아침 일찍 데일리 시장을 태운 리무진은 브리지포트의 3536 S. Lowe Ave. 방갈로를 빠져나와 시카고 시의 35명 국장들 (department heads)과의 크리스마스 조찬 모임으로 향한다. 모두들 데일리 자신이 임명한 소위 ‘데일리 사단’의 충성 분자들이다. 이들은, 데일리를 ‘시장 각하 (Hissoner- His Honor를 아이리시 액센트로 발음하면 이렇게 된다고 하는 데, 맞는 말? 모르쇠), 아님 그저 시장 (Da Mare- The Mayor를 역시 아이리시 시골 방언으로 발음한 것) 이라 부르지 않았을 까? 로이코 (Mike Royko)가 유행시킨 ‘보스(BOSS)’라고 부르지는 않았겠지? 조폭 냄새가 나니까. 여하튼, 이들은 데일리에게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부동반 아일랜드 왕복 항공권을 내민다. 케네디 (John F. Kennedy)대통령이 사망한 후 아일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리시-아메리칸이었던 데일리 시장 기분이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여러 보도에 의하면, 이날 아침 데일리는 자신만만하고, 명랑하고, 건강해 보였다고 했으니까.

조찬모임을 끝내고는 시청 (그 당시는 시빅 센터 Civic Center, 후에는 데일리 센터)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얼음조각물 전시를 관람하였다. 여전히 모든 이를 압도하는 ‘보스’ 데일리의 모습이다. 그리고는 시카고 시 남쪽 끝에 세워진 Mann Park Field House (시카고 공원국이 관장하는 커뮤니티 체육관) 개관식에 참여한다. 12시 30분 테이프를 끊으며, 농구코트에서 공을 넣어보라는 성화에 웃으며 한 방에 공을 바스켓에 집어넣는 다. 모두들, 브라보! 했다. 74세의 노인(?), 그것도 1974년 5월 6일 심장마비로 4개월을 쉬었는데… 진짜 완전 회복되었구나! 모두들 좋아했다. 전무후무한 6번의 시장 선거에서 승리, 재임 21년 째인 리차드 J. 데일리시장은 이렇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즐겁고 행복해 하였다고 한다.

다음 스케쥴은? 오찬 모임. 그런데, 시카고 시 남쪽 끝에서 오찬 장소 Near North의 호텔로 이동하던 리무진 안에서 데일리는 느닷없이 가슴 통증을 호소한다. 곧바로 의사를 찾아간 것은 당연지사! 900 N. 미시간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데일리를 진료한 담당의사, ‘아무래도 노스 웨스턴 병원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하며 입원절차를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운다. 이때의 시간이 오후 2시. 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데일리는 후에 시장을 지낸 맏아들 리차드 M.에게 전화를 건다. 잠깐 후에 의사가 돌아와 보니 이미 쓰러져 있었다. 심폐소생술 등 온갖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별 효력이 없이, 데일리 시장은 아들이나 신부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숨을 거두었다. 데일리의 사망 시각은 공식적으로는 오후 2시 55분이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널리 사용되던 시기도 아닌데, 그날 시카고주민들은 데일리 시장의 사망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 까? 모두가 정치생명 이젠 끝났다 생각했던 1974년의 심장마비도 극복하며 21년을 끄떡없던 데일리, 그것도 바로 한두시간 전에도 건강해 보이던 데일리 시장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죽었다고? 못 믿어! 못 믿겠어! 하지 않았을까?

‘1976년 12월 20일에 당신은 어디에?’ 라고 인터넷 검색하면 아주 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그날의 쇼크를 적은 일기들을 읽는데 불현듯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이 비행기 공격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머리 속이 새하야진채로 멘붕에 빠졌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데일리 시장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시카고 주민들이 그렇지 않았을 까? 그래서인지, 글마다 사망 시간이 오후 2시부터 3시 50분까지 제 각각이다. 사건의 개요 설명도 여러 갈래. 오후 2시부터 미시간애배뉴와 체스넛 (Chestnut) 길의 경찰 봉쇄가 시작했다고 하기도 하고, 아들 리차드 M.이 2시 전에 의사 사무실에 도착했다고도 하고. 개인의 글에서 나타난 분분한 오차는 뉴욕타임스, 시카고트리뷴 등 정통언론 보도에서도 작은 스케일이지만 보인다.
그 뿐 아니라, 주민들의 글에는 ‘왜 지금? Why now? ‘란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온다. 74세이고, 심장마비도 앓았고,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왜 지금, 이렇게 가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시카고는 이젠 어떻게 되지? 하는 염려도 보인다. 21년을 불패/무적(invincible) 데일리였기에, 시카고에서는 ‘시장(mayor)’ 과 ‘데일리 (Daley’는 분리될 수 없는 한 (1) 단어였다고 한다. 데일리의 사망 소식을 접한 10살 소년이 아버지에게, ‘그럼 누가 mayor daley가 되느냐?’ 고 물었다는 일화도 있다. 시장이라면 데일리 밖에 모르던 많은 이들이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고 고백한다. 더욱이나 1976.12.20. 의 데일리의 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에게 데일리시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정말 믿기 힘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온 시카고가 그저 허탈, 멘붕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일생, 아니 부모 때 부터 속해 있던 브리지포트의 성당, Nativity of Our Lord에 마련된 데일리의 빈소를 십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밤새도록 다녀갔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하는 심정이었을 가? 날씨가 엄청 추웠다는 데도 하루 밤 사이에 십만 명이나?
데일리 시장의 장례미사는 1976년 12월 22일 오전 9시 반, 시카고, 일리노이는 물론 미 전국의 내노라 하는 정치인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Nativity of Our Lord 성당에서 시카고 추기경 코디(John Cody)의 집전으로 치러졌다. 갑작스러운 사망에 멘붕에 빠지기는 가족도 마찬가지였겠지. 장례식장의 엘레노어(Sis) 데일리나, 아들, 딸들의 모습은 지금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장례식에서 그 당시 교황 바오로6세의 메시지를 코디 추기경이 대독하기도 했다. 독실한 카톨릭이었으니 당연하지 할 지도 모르지만 리차드 J 데일리의 위상이 보여지는 일이기도 하다. 데일리 가족이 대대로 참여했던 그 성당의 주임 신부이며 절친한 친구였던 그래함(Gilbert Graham) 신부는 조사를 하면서, 미세스 데일리가 공식(formal) 조사는 사양했다면서, ‘데일리가 보여준 삶이 곧 기억할 만하고 칭송 받을 것’ (The quality of his life and his actions were his eulogy)이라 하였다.

갑작스러운 사망 이틀만에 치러진 데일리 장례식에 참석한 유명(?) 인사들은 누구 누구? 몇 명만 열거하면; 록펠러 (Nelson Rockefeller) 현직 부통령, 카터 (Jimmy Carter)대통령 당선자, 케네디(Ted Kennedy)상원의원, 스티븐슨(Adlai Stevenson) 상원의원, 맥거번 (George McGovern)197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워커 (Dan Walker)일리노이 주지사, 톰슨 (Jim Thompson) 일리노이 주지사 당선자, 잭슨 (Jesse Jackson) 목사, 멧갈페 (Ralph Metcalfe)하원의원, 등등. 이중 맥거번이 눈에 뜨이는 이유는 197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그를 데일리 시장이 문전 박대, 아니 공개적으로 후원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던 탓이다. 의리라면 목숨을 걸었던 데일리인데 왜 그랬을 가? 시카고에서 열렸던 1968년 민주당 전당 대회 때문이었을까?

데일리는 2시간에 걸친 미사 후에 가족묘지에 안장되는 데, 유명인사들의 대거 참석으로 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시카고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끝까지 그의 운구행렬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성당을 나와 집 앞을 거쳐 Worth 타운에 있는 가족 묘지에 가는 길목에도 모자를 벗고 지켜보는 시민들, 트럭을 세우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십만 명쯤 인 것을 보니, 데일리 시장은 “시카고의 사랑받는 파라오” 이었음이 분명하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데일리에 대한 평가는 다음 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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