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틀림의 미학을 완성하고 요절한 에곤쉴레

표현주의 는 리얼리즘에 반대하는 미학 일반을 가리키며 초현실주의, 형식주의, 모더니즘 등이 이에 속한다. 리얼리즘은 이미지보다 현실을 우위에 두는 반면 표현주의는 객관적 현실보다 주관적 심리, 꿈과 환상의 표현 등에 치중한다. 인상주의가 단순히 화가가 눈으로 보고 느낀 물질세계를 그린 것이었다면, 표현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 즉 불안, 공포, 기쁨,슬픔 등 화가의 감정이 강하게 드러나도록 그렸다. 표현주의의 대표작가로는 에곤 쉴레, 에드바르 뭉크, 구스타프 클림트 등이 있다. 표현주의의 탄생은 현대 미술의 출발 신호탄이었다.
에곤 쉴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의 다뉴브 강변의 튤린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이 소도시의 역장이었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드로잉 감각을 보였던 쉴레는 소년기의 대부분을 철로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런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는 그의 드로잉을 태워버리고 구타까지 일삼다가 쉴레가 14살 되던 해 매독으로 사망하고 만다. 이런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쉴레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도 없는 외로운 아이였다. 오직 그가 잘 할 줄 아는 것은 걷기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쉴레는16살때 대리인이던 삼촌과 그에게 무관심한 어머니가 내켜하지 않는 가운데 비엔나 미술학교로 보내졌다. 후에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회상한 대목을 통해 표출시키지 못한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고독과 외로움을 자신의 그림 세계에 발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1년후인 1907년, 그의 드로잉을 당시 이름 높던 선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에 보일 기회가 주어였는데 그는 ‘자네는 이미 나보다 잘 알고 있을텐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쉴레의 천재적인 재능과 45세의 클림트가 17세의 쉴레를 자신과 스타일이 다른 한 사람의 화가로 인정해준 클림트의 큰 그릇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부터 이어진 그들의 우정은 클림트가 1918년 매독으로 세상을 등질 때 쉴레가 침대 곁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그림으로써 끝을 맺는다. 공교롭게도 쉴레 또한 그가 세상 떠난지 9개월 뒤 28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제 1차 세계대전 말기에 번진 악명높은 스페인 독감이 10월 비엔나에 당도하자, 당시 임신 6개월이던 쉴레의 아내가 먼저 독감에 걸려 사망했고, 쉴레는 그 사흘 뒤에 아내 뒤를 따른 것이다. 쉴레가 최후로 남긴 작품은 죽어가는 아내를 그린 드로윙이였다.
3년간의 미술학교 생활 동안 에곤 쉴레는 “사탄이 너를 나의 반에 토해 놓았구나.” 라고 그의 미술 선생님이 말할 만큼 골치 아픈 학생이었다. 쉴레는 그의 그림에서 당당히 전통을 거부하고 누드를 억압된 성적 충동을 나타내는 도구로 이용하여 인간의 원초적인 동물성을 강조했다. 그의 그림은 지나치게 선정적이었으며 어찌 보면 솔직하다 못해 변태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어린 소녀 모델을 그림으로써 도덕적으로 타락케 했다는 외설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기까지 한 일화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솔직한 성을 은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젊은 그에게 있어서의 삶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공격이었다. 24일간의 옥중생활에서 쉴레는 이렇게 썼다.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에곤 쉴레가 살았던 그 시대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잠재의식 사상으로 인해 인간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고뇌하고 예술 속에 표현하던 시대였다. 잠재의식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속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뭉크와 함께 표현주의로 통하는 그의 예술 세계의 주요 테마는 인간의 육체였다. 그는 인간의 육체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표현했으며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매우 강하다. 반면 에곤 쉴레가 표현하는 에로스는 기쁨의 느낌보다는 긴장과 괴로움의 느낌을 표현한다. 그가 그린 풍경화에서 불가사의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도시들로 작가 자신이 풍경을 보며 가지고 있던 느낌을 표현한 표현주의 그림이다. 그가 그린 수 많은 자화상들은 그가 가진 예술가의 영혼과 그 자신, 그리고 그 자신의 육체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보여준다.그의 그림 속에는 또한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그의 붕괴된 어린 시절이 반영되어 나타나고 전쟁으로 인한 상하기 쉬운 영혼의 느낌과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세대들의 짙은 감수성의 느낌이 배어 있다. 그는 어떠한 부끄러움도 없이 과감히 표현하였다. 그는 요절했지만 11년동안 3000점이 넘는 드로윙과 300점 이상의 페인팅을 남김으로써 짧은 삶동안 활화산이 폭발하듯이 창작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에곤 쉴레 그는 분명 이 시대가 표명하는 훌륭한 화가들 중 한 명 임에 틀림없다.
현시대 1000만달러이상의 작품 가치를 가진 에곤 쉴레와 동시대에 예술혼을 불태우며 우정을 나눴던 클림트의 그림 모두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술은 모던할 수가 없다. 예술은 원초적이며 영원하다.” 라고 한 에곤 쉴레의 속삼임이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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