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막에 강물이 흐르게 하리라

시카고 타임스 창간 5주년을 축하하며

오늘 11월 1일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 남북 군사당국이 ‘지상, 해상, 공중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군사 적대행위를 전면금지하기로’ 합의 한 첫날이다. 남북 군사분계선 어느 공간에서 든 전쟁 연습하는 장면을 볼 수 없게 된 평화스러운 첫날이다.

결혼기념일을 기억하듯,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축하할 첫날이 있다. 벌써 5년 전에 시카고 타임스가 창간되었다. 시카고 타임스는 지난 5년 동안 ‘코리안-아메리칸’ 그리고 글로벌 시민으로 살고 있는 교민들에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정확하고 빠른 뉴스를 전달해 준 살아있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시카고 타임스 창간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식의 비즈니스 마인드에서 시작한 것은 아닐 게다. 지금은 영상을 눈으로 보는 시대이다. 감성은 이성보다 빠르다. 그러나 이성은 결국 감성을 정복한다. 신문은 눈으로 문자를 읽어 이성에게 전달하는 매체이다.

신문은 사명감 없이는 시작하기 힘든 창업이다. 미국의 이민자로 정신적 광야 같은 곳에서 길을 잃고 목말라 하는 코리안-아메리칸 에게 희망뉴스전달자의 사명감에서 시작하였다 본다. 사명감은 무엇을 하고싶은 마음을 불러온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면에서 시카고 타임스의 창간과 그동안의 놀라운 업적을 축하한다.

신문은 공론의 장이다

신문은 데이터, 정보, 지식을 편집하여 많은 사람에게 정보와 사상을 전달하는 매체인 매스 미디어다. 신문도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이다. 정보란 실제로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 정부나 정치, 기후, 사고, 전쟁, 노동 교육 등에 대한 국내외 소식이 포함된다. 신문의 사상 전달이란 특정 언론인이나 독자가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써 그 역할을 한다. 신문은 흔히 공정성과 객관성을 말하지만, 신문에 따라 편협한 메시지가 전달되기 쉽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공론의 장이란 사회구성원 간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서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도출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사회이슈에 대한 대화의 장이다. 사회이슈는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경제요, 다른 하나는 정치이다.

인간 삶의 가장 원초적이며 기본적인 사회구조는 가정이다. 가정이란 그리스어로 ‘오이코스’라 말하는데 여기에서 경제‘이코노믹스’ 란 말이 나왔다. 그리스적 의미에서 보면. 경제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본질에 관한 학문이 아니다. 경제는 인간을 인간으로 유지시키는 최소한의 물질적인 조건과 연관된 학문이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경제는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학문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치이다. 인간이 함께 먹고 살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공동체의 과제, 비전, 업무를 토론하고 논의하는 ‘정치적 삶을 통해서만 인간이 된다. 요즈음 경제가 평화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올바른 경제, 사회정의가 평화이다. 사회정의가 공론이 되어야 한다. 사회정의가 모두를 이롭게 하는 평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가 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한 말에서 왔다. 후에 이 말이 사회적으로 해석된 것이다. 어쨌든,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의미는 “인간은 모이는 존재”란 의미다. 인간은 군집생활을 하면서 상부상조하고, 조직을 구성하고, 때로는 경쟁과 투쟁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독자로서는 결코 살 수 없다. 인간은 함께-있음 속에서 만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생긴 것이 정치이다.

정치의 목적은 정의실현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이미 기원전 380년경에 정의의 본질을 논하면서 그 방법으로 국가를 설립하고, 어떠한 국가가 정의의 덕을 실현하는지를 검토하였다. 플라톤은 국가를 이루려면 국내의 통치와 외적의 방어를 위해 세 종류의 계급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맨 아래 계급은 서민인데 서민은 농, 공, 상인이다. 그 위에 수비계급으로 군인이 있고, 그 다음 최고의 자리에 통치자로서 철인이 있어 국가통치의 임무를 맡게 된다.

여기서 주목 할 것은, 국가의 통치자는 선의 이상(이데아)을 인식하는 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계급에 각자가 목표하는 여러 덕이 있어야 하는데, 서민계급에는 절제의 덕, 군인계급에는 용기의 덕, 통치자에게는 지혜의 덕이며, 각각의 계급이 제각기 덕을 보존하여 일을 실천할 때 국가 전체는 정의를 실천한다고 생각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우리는 민주주의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엔 절대 군주나 황제가 주인으로 나라를 다스렸지만, 지금은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 통치자를 뽑고 정한다. 군주시대에서 개개인의 자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개개인은 군주나 국가에 복종하는 것을 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핵심교리는 공과 사, 즉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최대한 보호를 받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나친 개인주의와 그 자유가 타인을 경재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특별히 자유주의 경제란 이름으로 이기심을 부추겼다.

자유주의 경제로,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낮아졌다. 산업발전으로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말은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 말은 너무 자주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가치 있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었지만 시간 속의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은 상실했다. 이런 삶의 무의미함은 사적인 것만 추구하고 공적인 것은 무시하는, 나만 잘 살 면 그만이다는 생각이 나들어 낸 산물이다.

개울의 시대에서 가람의 시대로

필자가 어렸을 때는 개울물에서 살았다. 개울 물에서 물고기도 잡고 물장구치며 놀았다. 비가 내리면 자연스럽게 물의 흐름이 만들어지는데 이에 따라 개울이 생기고, 개울과 개울이 합쳐서 시내가 형성된다. 옛날에는 개울에서 멱을 감았다. 내를 건널 때는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그 당시 농촌에서는 농본기가 가물때엔 물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개울 물을 끌러 각기 자기논으로 대기 위해 서로 야단들 났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아전인수이다. 개울 물을 자기 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삶의 수단이고 어찌됐든 삶의 정당화였다. 남이야 어떻든 각자 자기 논으로 물을 넉넉히 끌어들이는 일은 생존경쟁이다. 이것이 개울시대의 삶이다.

이제는 개울의 시대에서 벗어나 가람의 시대로 가야한다. 개울을 넓히고 깊게 하여 개천을 만들고 더 넓혀 강물을 만들어내어 모든 사람의 논과 밭에 물을 넉넉히 대어주는 관개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삶의 관개시설이 사회정의이다. 공공의 선을 만들어내는 정의이다.

아직도 한국정치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개울물 정치로 아전인수를 한다. 자기 쪽에 유익하도록 모든 이슈를 자기 쪽으로 해석하고 호도한다. 네 편 내편 생존경쟁 만 부추기고 모두가 살 공공정책은 펴지 않는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큰 논을 가진 자가 힘으로 냇물을 끌어들여 농사짓고 작은 논 가진 자는 힘이 없어 밤새도록 물을 논에 퍼 날라 대야 했던 시대처럼, 오늘날 큰 기업이 힘으로 판권을 독차지하는 모습은 옛날 개울물의 경제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이것이 경쟁시대의 삶의 모토이다.

내는 건너보아야 안다고 했다. 경험하지 않고는 깊고 낮음을 잘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젠 내의 정치, 내의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의 규모가 커지면 강이 된다. 강을 가람이라 불렀는데, 큰 내라는 뜻에 서다.

성서에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겠다” 말했다. 멋 진 꿈이다. 사막에 강이 흐르면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고 그 속에는 문화가 바뀌고 삶이 바뀐다. 시카고 타임스는 사회정의를 공론화하여 사막과 같은 교포사회와 글로벌사회에 정의와 평화의 강을 이끌어 내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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