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2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가던 마티스에게 1941년은 힘든해였다. 십이지장 수술을 받은 후, 마티스는 이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워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지만, 마티스는 좌절하지 않고 그의 유명한 ‘종이 오리기’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종이 오리기는 침대나 안락의자에 누워서도 조수의 도움을 받아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작업실의 조수들은 밝고 생생한 색채들의 과슈(수채화, 아크릴 물감의 한 종류)를 종이에 칠했고, 마티스는 그 종이들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잘라서 캔버스 위에 배치했다. 추상적이고 소박한 양식의 이 새로운 미술 형식을 마티스는 매우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회화나 조각 작품들보다 이 종이 오리기를 통해 훨씬 더 높은 완성도를 성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티스는 평생 색체의 신비를 탐구했고 그렇게 색채의 바다를 헤엄친 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색은 단순할수록 우리의 감정에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

<푸른 누드> 오로지 푸른색으로만 표현한 그림임에도 왠지 풍성해 보인다. 대상의 실제 색에 구애받지 않고 한 가지 색을 원없이 사용하니 넉넉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그림 속의 푸른 여인은 지금 머리를 매만지며 사랑스럽게 앉아있다.

<푸른 누드>는 당시 아프리카 조각을 모아뒀던 마티스의 컬렉션, 그리고 1930년의 타히티 방문이 그에게 이러한 기법의 영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마티스는 색을 입혀 오려낸 과슈 조각을 배열하는 이 작업 과정을 ‘가위로 그린 소묘(Drawing)라고 불렀다.

<푸른 누드>는 색채와 형태를 완벽하게 통합하고자 한 마티스의 오랜 여정의 절정이자 이러한 화풍의 종착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푸른 누드>는 이러한 독창성이 마티스의 계승자들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1960년대 프랑스 예술가 비알라, 미국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 같은 작가들은 마티스가 닦은 토대를 기반으로 각자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마티스의 가장 유명한 종이오리기 작품 중 하나는 <이카루스, 1947> 다. 이카루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란 소년은 태양에 너무 가깝게 날아서 결국 비행의 꿈이 좌절된 채, 눈부시게 파랗고 노란 별들이 있는 하늘로 추락하고 있다. 소년은 태양에 그을려 날개를 잃고 죽기 직전이지만, 그의 강한 형상은 기쁨의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어떤 이들은 그 당시 프랑스를 점령중이던 나치에 대한 마티스의 은근한 비판이며, 프랑스 레지스탕스 전사들을 상징한다고 추측했다.
<이카루스> 검은바탕에 붉은 터치가 이 그림에 생명력을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마티스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리디아 델레츠토르스카야를 빼놓을 수 없다. 리디아는 1910년 러시아 의사의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모를 잃고 러시아에서 떠나 프랑스 니스에서 빈털털이 상태로 피난생활을 시작한다. 다니던 의과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1932년 리디아는 임시직으로 마티스의 스튜디오 비서로 일하면서 그의 집안일도 함께 맡아 관리하게 된다. 1935년 금발에 푸른 눈동자, 백설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프랑스 여성과는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던 리디아는 마티스의 요청에 응해 모델을 서게 된다.

그때 리디아의 나이는 25세, 마티스는 65세였다. 그러나 이 두사람의 관계를 오해한 마티스의 아내 아멜리에는 마티스에게 최후통첩을 한다. 사실 작은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강박적 사고를 가진 마티스와 함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마티스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모자장사를 하며 가정의 생계를 대신 책임져야했다. 이러한 삶 속에서 아멜리아는 우울증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아멜리아는 모자를 쓴 여인으로서 마티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정중한 신사였던 마티스는 이에 당연히 리디아를 해고하고 아내와 화합하려 했지만 한번 성난 아내의 분노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결국엔 1939년 초 아멜리아는 마티스를 떠나고 말았다. 마티스의 이혼후 마티스와 리디아는 자연스럽게 재회하게 되고, 독일의 선전포고가 있었던 직후라 두 사람은 피난길에 함께 오른다. 2차 셰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프랑스를 떠돌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마티스의 곁에 머물며 그를 돌본다.

영민한 그녀는 마티스의 작업에 관한 모든 내용을 기록하여 남김으로써 후학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병들어 쇠약하고 늙은 화가에게 젊은 그녀는 생활의 활력이었고 동시에 화가인 마티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1954년 11월 3일 마티스가 사망하기 전날, 한 여인이 마티스가 입원해 있던 병실을 찾았고 마티스는 볼펜으로 그녀를 스케치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주인공은 바로 리디아였다.

그림이 반드시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실과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마티스에게 있어 색채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의 표현이었다. 마티스는 자신의 감정이 원하는 대로 색채를 구사하고 미술작품에 대한 열정은 병마도 빼앗지 못했다. 강한 정신력으로 고행중인 수도승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드로잉을 멈추지 않았듯이 예술가의 혼이 담긴 그의 열정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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