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아! 민족의 어른 김수환 추기경

다시 그리운 민주화 투사

김수환 추기경님이 87세를 일기로 2009년 2월16일 선종하신지 벌써 10년째입니다.
조국이 군부독재의 말발굽과 총뿌리에 시달리던 그 통한의 시절, 민주화를 위한 용감한 투사로,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부패한 세상을 정화시킨 민족의 어른이셨던 추기경님을 저 세상으로 보낸지 어언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강산도 변하고 세상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님이 걸어가신 발자취와 삶의 향기는 변함없는 우리들의 큰 자산이었습니다.

오늘 10주기 추모식에 모였던 ‘명동성당’의 수많은 인파는, 그곳이 변함없는 ‘민족의 성지’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명동, 하면 저는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던 명동성당이 생각 납니다. 그곳은 사회적 약자의 피난처였으며, 민주화의 보루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 때 명동성당을 다닌 신자였습니다. 6월 민주항쟁 당시 성당으로 도망쳐 들어온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추기경님이 하신 감동적이며 고마운 말씀은 내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 온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농성 중인 신부님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뒤에는 수녀님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녀님들 뒤에 있습니다. 그들을 체포하려면 나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을 짓밟고 가십시요” 지금 그 때를 떠올리면 세상에 이런 사랑, 이런 솔리대리티(연대)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라는 생각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종파 초월한 정신적 지도자

이와같이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가톨릭 사제라는 종교인을 넘어, 한국 근세사의 인권과 민주화운동을 통해 중요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여기에는 지학순 주교를 비롯, 윤공희 대주교, 나길모 주교, 두봉 주교, 김재덕 주교 등 동역자들이 사회 참여파로 활동했습니다. 올해 1주기 추모미사에서 김희중 대주교는, 근래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모욕적이고 반 역사적인 발언을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신다면 김 추기경님은 어떤 심정이시며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존경하는 영적 지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김 추기경의 보편교회와 민주화 역사에 영혼의 참된 목자로서 기여 했다”고 전했습니다.
‘광주’가 ‘폭동’이라니요?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네요

입춘이 지나 희망의 봄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에, 한국은 지금 폭설과 혹한이 몰아치는 동토로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처럼 느닷없이 숭고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난자당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다 전두환 일당의 학살로 산화한 희생자들이 폭도로 몰려 부관참시로 두번 세번 죽음을 당하는 원통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름조차 거론할 값어치도 없는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비례대표) 자한당의원 3명이 주동이 되고 지만원(허위사실 유포죄로 유죄) 같은 극우 범죄자를 강사로 ‘국회에서 자리를 빌려 5.18진상규명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 이다” “광주는 폭동이다” 전두환은 영웅이다” “5.18 문제 만큼은 우리(보수)가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저희가 정권을 놓친 사이 종북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었다”고 막말을 해댔습니다.

이에 대해 즉시 사죄해야할 자한당의 지도부라는 자들이 한 말인즉,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 “우리당의 일인 만큼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말해 그 당의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의심케 했으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나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미국에서 매일 저녁 TV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굴비 처럼 묶인 팬티 바람의 학생들을 곤봉으로 무참하게 두들겨 패고, 개처럼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가던 공수부대의 잔인함을 시청하면서, 저들이 과연 우리 동포인가? 우리의 국군인가? 그 야만성에 이가 갈리고 치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광주의 아픔이 잊혀지려면 100년이 걸릴 것이라는 외신기자들의 보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민주화 기대에 부풀었던 ‘서울의 봄’이 일장춘몽이 되자 전국의 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지요. 광주가 가장 심했습니다. 전두환 진압군은 잔인한 살육전을 벌였습니다. 분노한 광주시민이 총궐기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고립된 광주는 총칼앞에 굴욕적인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에 앞서 김수환 추기경은 계엄군과 시위대의 유혈충돌만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전두환을 만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았지만 소득이 없었음을 한탄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윤보선 전 대통령, 함석헌 옹, 재야 논객 천관우 씨 등과 함께 광주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성명을 발표 했습니다. 추기경님은 70-80년 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생애 가장 괴로웠던 때가 바로 5월의 광주 였다고 실토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찾은 민주주의 인데, 지금 세상밖은 한 줌밖에 안되는 ‘태극기부대’라는 목청 크고 비이성적인 극우 세력이 ‘촛불 정신’을 욕되게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우리사회는 큰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던 김수환 추기경님! 반목과 질시, 저주와 분노가 팽배합니다. 이들도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할까요? 어느 신문의 사설 제목 처럼 “당신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선한 목자시며 선각자였던 ‘바보’의 미소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사랑만이 사회변화시켜

오래 전입니다. 나는1998년 9월16일, 김 추기경님을 만났습니다. 영광이었고 럭키했습니다. 가을 하늘이 맑았던 수요일 이였습니다. 시카고 성당 사제관에서 한 시간 이상을 인터뷰 했습니다. 곡절이 있었지요. 그 전날 성당 뜰에서 대여섯 명의 신부님들에 둘러싸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추기경 님에게 무조건 달려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일행 중 대표 신부인듯한 분이 “추기경님은 해외에 나오시면 기자를 안 만나시고, 될수록 정치적인 비난은 삼가한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발걸음을 돌리면서 저의 첫 번째 저서인 ‘기자는 글로 말한다’라는 책을 김수환 추기경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이튿날 사제관에서 신부님이 신문사로 저에게 전화를 해, 추기경님이 나를 만나겠다고 하시니 오전 11시까지 사제관으로 오라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추기경님은 평소 ‘늘 인간답게, 누구든 인간답게’ 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하셨습니다. 자기 아닌 남을 위해서 살때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 때 김수환 추기경의 따듯한 인간미를 실감했습니다. 통일의 전망에 대해서”평화통일 달성을 위해 인내와 희망을 갖자”고 갈파한 20년전 추기경님의 선견지명에 감복하게 됩니다.

별명 “나는 바보요’의 의미

김 추기경님 께서는 불면증이 심해 잠을 잘 못 주무시는데, 지난 밤 내 책을 다 읽었다며, 책 내용 중 도산 안창호 선생에 대한 글을 읽고 나와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한국일보 1면 탑을 장식했고, 또 4면과 5면에 질의 응답 전체를 수록했습니다. 우리는 본격 인터뷰 전,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과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된 셈입니다. 추기경 님의 별명은 ‘바보’입니다. 그 의미는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사랑을 전한 사랑의 메신저의 모습에서 바보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 김수환의 유언을 성찰해 봅니다. “서로 사랑하시고, 용서하세요” 명심하렵니다.

시카고 타임스 주필

육길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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