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 말

없는 집 제삿날 돌아오듯 한다는 옛말이 있다.
형편이 빠듯해 제수 마련하기 벅찬데 제삿날은 쉴새없이 닥친다는 말이겠다.
지난 일년간 무얼하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결에 연말이 코앞에 들이닥쳐있다.

세월이 이렇게 사정없이 달려가면 살날이 빨리 줄어드는데 라고 갓잖은 걱정을 다하니 나도 늙긴 늙었나보다. 그나저나 이 연말의 온갓 들썩임이 모두 번거롭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니 이건 뭐지? 아이들을 키우는동안은 아이들때문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세우고 쇼핑도 다니고 집안 청소도하고 집사람은 빵과 쿠키를 굽기도 하며 명절 분위기를 내려고 한껏 분주했었는데 왜 이리 무얼하고 싶질 않을까?

아닌게 아니라 갖가지 연말모임에 내는 회비에, 끝없는 선물쇼핑에, 객돈 쓸일 많아지니
옛말이 틀림이 없구나. 하긴 오랜동안 하던 깐이 있어서 추수감사절지나고 바로 집사람, 아들내외와 함께 나가 모양좋고 큰 생나무를 사다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다. 나무를 고르는 과정, 차 지붕에 싣는것, 집에 들고 들어오는것, 스탠드에 세우는것, 미지근한 물에 설탕을 타 첫물을 주고, 미니 라이트와 오너멘트를 다는 전과정이 재미있고, 완성된 트리가 저리 예뻐도 썩 흥분되고 들뜬 느낌이 아니었다. 왜? 어린아이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같이 즐기고 떠들고 기뻐할 꼬맹이들이 없지 않은가? 두살이 되어가는 하나있는 손녀는 뉴욕에 살고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오지를 않는다. 금년은 딸아이가 시집식구들과 명절을 보내야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아들내외도 처가쪽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간다. 아들은 결혼한지 5년이 되건만 아직 아이가 없다.

창밖에 어둠이 떨어지면 트리가 반짝이고 캐롤송이 울려퍼져도 이 쓸쓸하고 허전한 느낌은 뭘까? 오롯이 두 부부만 남아 보낼 크리스마스가 횡덩그라니 적막할것이라는 그림이 보여서? 아니, 처가쪽 식구들이 많아 처조카집에 모두 모여 디너를 하기로 했으니 그럴일은 없건만. 우리 아이들이 모두 빠지는 디너가 뭔가 이빠진것같은 느낌 때문에라고 해야 정확한 분석이 될려나? 에이구 누가 들으면 자식바래기깨나 한다고 하겠구먼. 그렇지도 않은데. 실인즉슨, 한참 재롱을 피우는 손녀가 눈에 밟혀서라고 하는게 정직한 표현이겠다. 사실 명절이 제일 즐거웠던 때는 아이들이 10세 안팎이었을 때였다. 무엇을하던 어디를 가던 아이들과 함께 했고 아이들의 신나함이 우리의 기쁨이었다. 사춘기 전 나이가 아이들이 가장 예쁜때이지 않는가? 사춘기가 되며 돌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해가 않되고 염려스러워지는 경험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자식 기른 사람이면 누구나 했을 것이다. 어린아이 가진 젊은 부부들에게 “지금이 제일 좋은때요, 아이들하고 마음껏 즐겨요. 좋은 때 금방 지나가니까”라고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해주는 얘기가 어찌 그냥하는 소리겠는가.

요즘 주위에 늦은 나이까지 결혼않한 자녀들,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제때에 못낳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우리도 그렇고). 이런 경우 부모들이 노년에 들어서며 느낄 허전한 마음을 자식들이 어찌 알까? 도대체 왜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는지? 그렇다고 드립다 떠다밀어 될일도 아니고. “연말은 가족과 함께 따듯하게 보내세요” 라고 외쳐대는 저 놈의 광고, 누구 약올리나?

연말은 금방 밀고 들어올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때문에 조금은 들뜨는 시기이다.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일들에 새롭게 각오를 다지기도 하고. 연말은 캘린더 상에서는 한해를 마감하는 때이지만 우리의 삶속에서는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작게나마 개선과 발전을 약속하는 다짐의 계기가 되는 때가 아닌지? “새해에는 이럴꺼야” 라고 계획을 세워도 지키지 못하기도 하고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한번 스스로 다짐을 해보면 어떨까? 다짐하는데 돈드는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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