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년간의 “Council War”

해롤드 워싱턴 시장 (2)

시카고역사 #96에서 보았듯이, 해롤드 워싱턴(Harold Lee Washington)의 최초 흑인 시카고 시장이 된 과정은 ‘산 너머 산’의 연속으로 ‘아슬아슬, 험난’ 그 자체이었다.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정정당당히 민주당 후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카고 정치머신인 민주당 (Cook County Democratic Party-CCDP)이 워싱턴이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공화당후보 엡턴(Epton) 당선을 위한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렸던 것은 시카고의 뿌리깊은 극심한 인종차별을 만천하에 폭로한 해프닝이었다. “시카고의 인종차별? Never!” 하였던 리차드 J. 데일리가 무덤에서 엎어 지지 않았을 가? 싶을 정도이다.
여하튼, 그토록 반대하던 흑인 시장이 당선되었으니, 그럼 어찌한다? 그냥 손 놓고 흑인이 시장 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놔둘 수는 없지! 그것도 아주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방해를 해야지! 하며 풀 가동된 시카고 정치머신 (Cook County Democratic Party-CCDP)의 ‘워싱턴 물 먹이기’ 작전, 이름하여 “Council War.”

워싱턴시장 재임 처음 3년간 시카고 시의회에서는 조직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Council War”이 펼쳐졌고, 이로 인해 시카고는 ‘호숫가의 베이루트 (Beirut on the Lake)’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1970/80년대 무엇 하나도 성사되는 일이 없었던 정치 부재의 나라였던 레바논 (Lebanon)의 수도 베이루트를 기억하시죠? 그리고, 그 당시 인기 고공행진 중이던 Star Wars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이렇게 명명된 “Council War (시카고 시의회의 전쟁)”의 실제 내용을 살펴보자.

시카고에서는 4년마다 시장 선거와 시의원 선거가 한 날에 치러진다. 시카고 시의원은 총 50명이다. 시의회에 상정되는 안건이 통과되려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과반수 찬성이면 된다. 만약 찬/반이 25대 25가 될 경우에는 시의회 의장인 시장이 투표권을 사용하여 안건을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시의회가 통과시킨 안건에 시장이 거부권(비토Veto)을 행사할 경우 34명의 시의원의 찬성이 있으면 시장의 거부권을 무효화(override)시킬 수 있다. 리차드 J. 데일리 시절, 시의회는 데일리 시장의 rubber stamp (시장이 제안한 안건에 거의 무조건 찬성하는 고무 도장?) 이었던 것을 기억하며, 1983년 워싱턴시장과 함께 당선된 시의회 의원들의 구성을 살펴보자.

워싱턴 반대 그룹: 워싱턴 낙선을 앞장서서 진두 지휘했던 CCDP의 보스 보돌리악(Ed Vrdolyak)을 정점으로, 벌크(Ed Burke)를 포함한 백인 시의원 29명. 흔히 ‘Two Eddies그룹’ 또는 ‘보돌리악 29’이라 불리웠던 이들은 똘똘 뭉쳐 워싱턴 시장 측이 상정한 안건은 무조건 반대부터 한다. 워싱턴 지지 그룹은? 흑/백/히스패닉 시의원 2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에반스 (Tim Evans)가 이 그룹의 좌장이었다.

시장당선 후 처음 열린 시의회에서 워싱턴시장과 21명의 그의 지지 그룹은 정족수를 채운 후에는 곧바로 퇴장한다. 왜? 그날의 의제는 시의회 각 위원장을 선출하는 일이었는 데, 보나마나 ‘보돌리악 29’ 이 위원장을 독점할 것이니까, 앉아서 당하느니 단체 퇴장으로 힘을 과시한다는 의도이었으리라 싶다. 여하튼, 그날 이후, 시카고 시의회 의사진행은 ‘불 보듯이 뻔하게’ 이루어졌다. 즉, 워싱턴이나 그의 지지자가 상정한 안건은 ‘보돌리악 29’이 무조건 반대하여 부결시키고는, 워싱턴의 안건과는 상반된 내용의 안건을 대안으로 제기하여 통과시킨다. 이렇게 시의회를 통과한 안건은 시장에게 보내진다. 물론, 워싱턴시장은 이에 대해 거부권 (veto)을 행사한다. 시장이 비토하여 다시 시의회로 돌아온 안건은 시의회에서 시장의 비토를 무효화하던가 아님 백지화시키게 되어있다. 오버라이드(override)에 필요한 것은 34명의 시의원 찬성이다. 그런데, 아뿔사! ‘보돌리악 그룹’은 29명의 시의원 밖에 없다. 자연히, 백지화될 수 밖에. 시의회에서 예산 통과되지 못하니, 리차드 J. 데일리가 그리도 자랑했던 ‘Chicago, city that works’는 완전 사라졌나 싶기도 했고, 워싱턴은 첫 임기동안 ‘비토’로 시정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 기간에 시의회는 워싱턴 탄핵을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무산되었지만.

시장의 임기는 4년인데, 워싱턴의 처음 임기 3년 간에만 Council War가 있었다고 할가? 제인 번시장처럼 워싱턴도 3년 동안의 Council War에 지쳐 타협하였나? 실제로, 그 당시 시카고 트리뷴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시카고 주민 대다수가 흑백을 막론하고 Council War에 심신이 지쳐 있어 워싱턴 찬성지지도는 완전 반 토막되고, 시의회 지지도도 밑바닥을 쳤다고 한다. 마치 2015-2019년의 일리노이 주정부를 보는 듯 하다.

Council War가 끝나게 되는 계기는1986년에 왔다. 1980년 내내 급속히 증가하는 비백인 마이노리티 인구가 반영되지 않은 구태의연한 시의원 구역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소송이 승소하면서, 1986년 3월 18일 법원이 명령한 시의회 구역 재조정 (redistricting)에 의거한 시의원 특별 선거가 있었던 것이다. 이 선거에서 워싱턴 지지 그룹은 24명으로 늘어났고, 워싱턴 반대 그룹은 25명이 되었다. 그리고, (50% + 1)의 지지를 받은 승자가 없어 재선거를 해야 할 곳이 1구역이었다. 이 재선거에서 승리한 시의원이 워싱턴을 지지하였던 히스패닉 계의 구티어라즈 (Luis Gutierrez- 후에 연방하원이 된 사람)이어서 워싱턴 지지 측과 반대 측은 각각 25표씩 사이 좋게(?) 시의회를 나누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시의회에서 안건 표결이 무승부 (25 대 25)가 되었을 때는 시의회 의장인 시장의 투표로 교착상태(stalemate)가 풀린다. 자연히, 워싱턴 반대 ‘보돌리악 29’ 은 ‘보돌리악 25’이 되면서 세력이 약화되었고, 워싱턴시장은 ‘비토’를 통해서가 아닌 시의회 안건통과를 통해 시정을 펼치게 된 것이다. 3년을 거부권 행사로 시정을 운영해야 했던 워싱턴시장, 휴~~.

이러한 사태의 전개에 실망한 탓인지, 보돌리악(Ed Vrdolyak)은 CCDP 보스를 그만 두었을 뿐 아니라 아예 민주당을 탈퇴하고 1987년 시장선거에서 Illinois Solidarity Party (일리노이 연대정당) 후보로 워싱턴과 맞서지만 참패하고 만다.

어떻게 보돌리악이 공화당도 아니고 1986년 선거에서 어이없는 우연(fluke)으로 잠간 생겼다가 사라진 Illinois Solidarity Party후보가 되었는 지는 후에 워싱턴의 1987년 선거를 다룰 때 설명하겠지만, 어찌되었던 보돌리악의 정치 생명은 1986년 말부터는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의회의 교착상태를 풀고 정상적인 시정을 펼칠 수 있어서1986년 봄부터 워싱턴시장이 ‘꽃 길’만을 걸었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최초의 흑인 시장으로, 워싱턴은 처음 3년뿐만 아니라 재임시절 내내 기득권층 백인으로부터는 백안시(disdain)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워싱턴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도 높았던 흑인들 또한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백인에게 치중한 큰 프로젝트 중심이었던 시정부의 사업 방향을 흑/백 커뮤니티에 골고루 안배하는 소규모 프로젝트로 전환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Star Wars영화에 나오는 선한 세력 대표 Luke the Skywalker와 악한 세력 대표 Lord Darth Vader를 기억하시나요? 3년간의 Council War를 코믹하게 풍자한 로컬 코미디언들은 워싱턴을 Harold Skytalker, 보돌리악을 Lord Darth Vrdolyak으로 불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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