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1운동은 태극기를 든 촛불운동

3.1운동 100주년을
즈음하여

필자의 부친은 1905년생이셨다. 민족적 거국행사가 벌어지던 날 1919년 3월 1일 정오에 14살이었던 나의 부친은 무엇을 하였을까? 3.1운동 100주년을 맞으면서 그 때 그 역사를 회상해 본다. 나의 후손에게 떳떳한 조상이 되기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는 엄숙한 시간인 것 같다.
3.1운동은 1910년 8월 일제에게 강점 당 한지 9년 만에 일어난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쟁운동이다.

나라를 빼앗겨 식민백성으로 어두움 속에 살던 조상들이 일어나 민족적 여명을 밝히겠다는 독립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정오에 서울의 파고다공원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과 함께 만세운동으로 시작되었고, 이 만세운동은 전국의 9개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전국적으로 2백만이 넘는 조선인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를 계기로 전국 218개 군에서 1,491건의 시위가 일어났다. 이 운동으로 학살된 자가 7,509명, 부상자가 15,961명, 검거된 자가 46,948명이나 되었다. 3.1운동은 근세 한국인의 숭고한 정신적 유산이다. 3.1절100주년을 맞아, 이 숭고한 민족적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의 후손, 특히 희생당한 분들의 후손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무엇이 이 운동을 가능케 했으며 그것의 현대적의의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그 때 거기에 모여 “대한독립 만세” 함성을 외친 백성들은 남녀 노소, 높고 낮음, 양반과 상놈의 차별없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당시 사용되었던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먹물로 덧칠해 태극문양과 4괘를 그린 태극기였다. 3.1운동을 준비한 사람들은 비밀히 숨어서 일장기 위에 먹물 붓으로 쉽게 일장기의 태양 모습을 태극문양으로 바꾸고 네 모퉁이에 4괘를 그려 넣어 만들었다. 이것은 기지요, 일장기를 바꾸어 태극기를 만들 듯, 언젠가는 이 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정신일 게다.

지구는 남극과 북극을 축으로 24시간동안 자전한다. 그리고 동시에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돌면서 365일 동안 공전한다. 이것이 우주의 질서이다. 지구의 자전으로 밤이 낮으로 바뀌어 하루를 이루고, 지구의 공전으로 계절을 바꾸면서 1년을 이루어 역사를 이루게 한다. 떳떳한 한 국가를 지키려면, 국가주의라는 정신적 자전능력과, 보편주의라는 정신적 공전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가의 정신적 자전은 애국이고, 정신적 공전은 인류평화다. 이것이 3.1운동의 정신이다. 독립선언문 마지막에 이렇게 밝혔다. “오늘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요, 오직 자유정신의 발휘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3.1운동의 정신은 민족주의(Nationalism)와 인류평화라는 보편주의(Universalism) 정신의 발로에서 시작되었다.

3.1운동과 개신교 정신

직접적으로는, 3.1운동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서 고무되었다. 윌슨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 종식 후 1918년 1월 연두 교서에서 새로운 전후 질서의 14개조 원칙을 제안하였다. 여기에 민족자결주의와 국제평화유지를 위한 국제연맹의 결성 등이 포함되었는데,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식민지배 하에 있던 약소국들을 움직이게 하였고, 한국의 지식인들도 물론 민족자결주의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그 운동에 능동적으로 목숨을 걸고 참여한 군중속에는 대다수가 개신교도들이 였다. 그리하여 3.1운동 속의 개신교정신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왜 기독교 정신이라 하지 않고 개신교 정신이라 부르는가?
1919년 2월 24일 기독교도 측과 천도교측은 연합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미국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3가지 방식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연희전문학교, 보성전문학교, YMCA, 세브란스 병원 구내 학생들도 참여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불교계도 동참케 하였으나, 유림과의 연합은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이 독립선언 실무를 담당했던 인사들은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3.1운동 지도부는 최남선에게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요청했다. 최남선은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나 개신교인들과 교류하며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지식인이었다. 그가 기초한 선언서 속에 포함된 “정의, 평등, 자유, 무저항주의 등은 모두 기독교에서 나온 정신이다” 고 그는 후일 말했다 한다. 여기에서 기독교 측이란 개신교도를 말한다.

김희중 대주교의
역사적 3.1절 고백

3.1 운동 100주년을 앞둔 지난 2월 20일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담화문에서,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그 역사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했음”을 고백했다. 그는 천주교가 “조선 후기 한 세기에 걸친 혹독한 박해를 겪고서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그런 까닭에 당시 천주교회가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교분리 정책으로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한 것은 물론, 그 뒤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참여하고 신사 참배를 권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며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고 반성”한다며 당시 교회의 침묵에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천주교인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본받고 따르겠다”고 했다. 당시 한국천주교회는 시대적 징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프롤레타리아아트를
움직인복음

3.1운동당시 김구, 이승만, 안창오, 신채호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개신교회인 상동교회 출신들이다. 상동교회는 김구, 이준 등 독립투사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이곳 지하실에서 헤이그 특사 사건 모의가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신민회가 조직되었다. 그 당시 상동교회 담임목사 전덕기 목사는 이렇게 회고하였다.

내가 스크렌턴 선교사에게 들었던 복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해방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고통받는 자에게 평안을”은 나를 새로 태어나게 했다. 초창기 개신교 목사들과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하위계급의 출신들이었다. 즉 개신교복음은 프롤레타리아아트를 위한 복음이었다.

프롤레타리아아트(Proletariat)는 독일어로 하위계급을 일컫는다. 사회적으로 하위 계급을 칭한다. 흥미롭게도 기독교가 조선에 들어온 것은 천주교와 개신교, 둘로 나누어져 들어왔는데 천주교는 상위계층의 계급에 전파된 반면, 개신교는 하위계층에 전파되었다. 천주교는 양반계급에 전파된 반면 개신교는 여인들과 상놈계급에 전파되었다. 이것이 개신교 속에 역동적으로 일어났던 개화 정신이었고, 새로운 인간의 가치를 자각하게 되었고, 3.1운동의 역동적인 힘이 되었다.
빛을 잃어가는 개신교

시카고 제일 연합감리교회 초대 목사인,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가장 젊은 김창준은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선언서에 일단 서명하면 다시 살겠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처음 생각에는 내가 죽으면 처와 어린 자녀는 누가 보호하나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가정보다 먼저 조국이다. 내 사랑하는 조국 하나님의 유업이신 내 조국. 내 조국의 자유를 얻는데 내 살과 피가 한점의 보토가 될 진 대 이에서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촛불은 자신을 희생하면 빛을 밝힌다. 이것이 촛불의 정신이다. 3.1절 당시 개신교 정신이었다.

기원전 4세기경 고대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란 철학자가 있다. 그는 어느 날 남루한 차림으로 낮에 등잔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사람들은 혹시 그가 맹인 아닌가? 밤 인줄 알고 남과 부딪칠 가봐 등잔불을 켜고 다니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직한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요!” 현재 한국의 개신교 지도자들 가운데서 참 지도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3.1운동때 쥐었던 태극기는 들었지만, 가슴에 품어야 할 촛불정신은 잃었다. 인류의 평화를 추구하는 정신을 잃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듯 불안하다.

성서에 보면 예수께서 특별히 언급하신 사람이 소개되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다. 어떤 강도만난 사람이 길가에 쓰러졌는데, 그 앞을 여러 사람이 지나갔다. 이름있는 사람이고, 모든 능력을 갖춘 사람이 그 길을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무명한 사람이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돌보아주었다. 바로 그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다. 우리 역사에 그 사람은, ‘그 때 그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한 사람이었다’ 로 기록될 것이다.
오늘은 100년전 삼일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기억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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